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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다시 한 번 삼성을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삼성을 생각한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故황유미 씨의 이야기를 그린 <또 하나의 약속>이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파문이 이미 한 번 울려 퍼진 적이 있었다. 파문의 주인공은 김용철 변호사였다. 


김 변호사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도움으로 삼성에서 자행되는 내부비리를 폭로했다. 그리고 이어 삼성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엮어 책으로 냈다. 그 책이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이다. 이 책의 한 대목이다. 


"2009년 1월16일 발표된 삼성 사장단 인사안은 삼성 조직의 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비리에 가담해서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에게 큰 보상이 돌아갔다. 반면, 삼성을 지금처럼 키우는데 기여한 이들은 밀려났다. 결국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건희 일가에 대한 충성심이었다."


- 본문 119쪽 


김 변호사는 이 책을 통해 삼성의 부도덕한 관행 전반을 상세히 알리는 한편 삼성이 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에 대해 강력히 경고했다. 그런데 그의 폭로 이후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김 변호사의 양심고백 이후 여론의 화살은 삼성이 아닌 김 변호사로 향했다. 여론은 기다렸다는 듯 그를 추악한 인간이라고 손가락질 했다. 삼성에 입사해 풍족한 생활을 누릴 만큼 누린 사람이 회사를 배신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변호사가 모든 것을 던져 삼성의 비리를 고발했건만 이 사회는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오히려 이명박을 대통령에 앉히며 재앙을 불러 들였다. 재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정원과 군 사이버 사령부, 보훈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국가 기관이 전방위적으로 대선에 개입했고 박근혜는 이들의 도움에 힘입어 청와대에 입성했다. 한편 국정원의 댓글을 통한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 수사팀은 공중분해 됐고, 급기야 사건 은폐를 진두지휘한 김용판 前 서울경찰청장이 무죄판결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잇달아 비리전력의 인사들이 요직에 중용됐다. 이들이 중용된 첫 번째 이유는 박근혜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었다. 2009년 1월 삼성에서 벌어진 일이 전 국가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결국 김 변호사를 추악하다고 손가락질 했던 그 업보가 지금 우리 사회의 윤리 붕괴와 위정자들의 도덕적 타락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과거지사에 대한 후회는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의 경고를 귀담아 듣고 삼성의 일그러진 관행에 제동을 가했다면 아마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 건강해졌을 것이다. 


마침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해 삼성전자의 홍보담당 부장이 "허구의 이야기를 사실처럼 포장해, 제가 다니는 직장을 범죄집단처럼 그리고 있는데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답답했다"는 심경을 내비쳤다. 


국가기강과 사회윤리가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 내려가고 있건만, 이에 대한 수습은 여전히 난망해 보인다. 다시 한 번, 삼성을 생각한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 사회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