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발락 , 아우프 비더젠 !
독일 축구 대표팀의 미드필더 미하엘 발락이 은퇴를 선언했다는 소식이다. 그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불의의 부상을 당해 본선무대를 밟지 못했다. 뒤이어 2011년엔 소속팀 첼시에서 방출돼 지금까지 소속팀을 못 찾고 야인으로 전전했다. 그의 은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참으로 아쉽기만 하다.
발락은 1999년 처음 독일 국가대표팀에 발탁됐다. 그는 이후 유로2008 대회까지 '전차군단' 독일 대표팀의 주장으로 맹활약 했다. 그가 대표팀을 누볐던 시기는 독일 대표팀이 하향곡선을 긋다가 반등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독일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이후 2006년 월드컵 직전까지 급격한 하향곡선을 그었다. 이 시기 독일이 차지한 메이저 대회 타이틀은 1996년 잉글랜드에서 열린 유로대회 우승이 전부였다. 독일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3-0의 충격패를 당했고, 2000년-2004년 유로 대회에서는 단 1승도 챙기지 못하고 짐을 싸야 했다. '전차군단'의 명성은 빛이 바랬고 '녹슨 전차'라는 비아냥 섞인 자조만이 팽배했다.
하지만 독일은 200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을 계기로 확 달라지기 시작했다. 독일은 세트피스 위주의 단조로운 스타일을 구사해 재미없는 축구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2006 월드컵은 확연히 달랐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치기 시작했다. 독일은 월드컵에 이어 유로2008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발락은 이 시기까지 대표팀 주장으로 활약했다. 이렇게 본다면 발락은 독일 대표팀의 쇠락과 비상을 지켜본 산 증인이었던 셈이다.
발락은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큰 불운을 맛보게 된다. 그는 포츠머스FC와의 FA컵 결승에서 발목 부상을 당한 것이다. 그에게 부상을 입힌 주인공은 가나 출신의 케빈 보아텡. 공교롭게도 독일과 가나는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같은 조에 속해 있었다.
발락은 발목부상으로 인해 끝내 남아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대회 개막 전에 많은 이들이 그의 결장으로 독일 대표팀의 전력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팀은 그가 없어도 승승장구했다. 비록 예선에서 세르비아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발락 대신 주장 완장을 찬 필립 람을 비롯해 루카스 포돌스키, 메수트 외칠, 자미 케디라, 토마스 뮬러 등 신예들은 펄펄 날았다. 16강전에서 잉글랜드를 4-1으로 완파했고, 8강전에서 리오넬 메시가 버틴 아르헨티나 마저 4-0으로 물리쳤다. 그 어디에도 발락의 부재에 따른 공백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발락의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특히 우승과 지독하게 인연이 없었다.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한민국과의 4강전에서 이천수에게 반칙을 범하는 바람에 경고를 받아 경고누적으로 결승전을 뛰지 못했다. 팀은 브라질에게 0-2로 패했고 그는 결승무대를 뛰어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궈야 했다. 2006년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에게 패하는 바람에 4강 진출에 그쳤고 유로2008에서는 스페인의 벽에 막혀 또 다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의 준우승 징크스는 소속팀에까지 이어져 바이에른 뮌헨, 첼시에서 뛰던 시절에도 연거푸 준우승의 벽을 넘지 못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Ende gut Alles gut)'는 독일 속담이 있다. 그는 쇠락해가던 독일 대표팀의 중원 사령관으로 활약하며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줬다. 어떻게 보면 발락은 독일 대표팀의 중흥에 필요한 디딤돌을 놓은 주인공이다.
하지만 남아공 월드컵이 임박한 시점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월드컵 본선무대에서의 활약이 좌절된데 이어 소속팀마저 구하지 못한 채 쓸쓸히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끝이 좋지 않으니 그가 이룬 공마저 빛이 바래는 것 같아 그저 아쉽기만 하다.
발락이 조금 앞섰거나 조금 늦은 시기에 대표팀을 누볐다면 그의 진가는 더욱 빛을 발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정치인이고, 운동선수고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시기를 잘 타는 것도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미하엘 발락, Auf Wiederseh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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