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J. 홉스봄에 얽힌 추억
에릭 존 어니스트 홉스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사회주의 경제사학자다. 그가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박현채 교수의 번역을 출간된 '혁명의 시대'는 대학에 갓 입학해서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지 몰랐던 철부지 학동인 나에게 엄청난 지적 충격을 안겨줬다.
* 박현채 역, 혁명의 시대
이 책은 그냥 한 번 읽고 버리는 책이 아니었으며 근대 세계의 형성에 대한 지식이 필요할 때 마다 꺼내 들었고, 이 책을 산 지 22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곁가지를 치자면 번역서도 나름 레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읽어 본 번역서 가운데 최고를 꼽자면 길현모 교수가 번역한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바로 박현채 교수가 번역한 E.J. 홉스봄의 이 책 '혁명의 시대'를 꼽는다.
'혁명의 시대' 이후 난 그에게 또 한 번의 지적 충격을 받게 된다. 그 책이 바로 '극단의 시대'였다. 난 20세기의 모든 것은 이 책 속에 담겨져 있다고 자신한다. 특히 이 책에선 전작인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와는 달리 생동감이 느껴진다. 아마도 전작들이 자신의 생과 멀리 떨어진 역사를 다뤄서이리라.
* 이용우 역, '제국의 시대'
하지만 이 책 '극단의 시대'는 그만의 냉철한 역사관은 물론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무엇보다 파시즘의 창궐을 이야기 하는 대목에선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난 이 책을 출간되자마자 냉큼 집어 들었고 이후 이 책은 14년째 책장을 차지하고 있다.
난 개인적으로 홉스봄의 해박함과 박진감 넘치는 문체를 늘 동경해왔다. 그를 통해 역사를 배울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기도 했다. 물론 그에 대한 비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는 특히 서구 중심주의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도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제국의 시대'에서 조심스럽게 서구 중심주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E.H. 카가 갈파했듯 역사가도 시대의 산물이다. 그는 제1세계가 중심이 된 시대를 살았던 역사가였다. 착취로 점철됐던 제3세계에 역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현재의 시각으로 그를 서구 중심적 역사가라고 폄훼하는 건 그가 역사에 남긴 족적을 훼손하는 행위다. 그는 타계하는 그 순간까지 제1세계의 횡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가 남긴 책을 통해 타계한 고인을 추모하고자 한다.
고인이여,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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