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전병욱을 말한다 - ①
전병욱 목사, 홍대 새교회 개척.... 기독교계 술렁
진정한 회개만이 목회사역 재개를 가능하게 할 것
구약성서 사무엘기는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자신의 심복인 우리야의 아내 바세바를 범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우리야를 전쟁터에 내보내 죽였다고 기록한다. 이 같은 행태는 명백한 범죄행위였다. 선지자 나탄은 그를 강하게 질책하고 이에 그는 하느님 앞에서 회개했다.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해 다윗은 회개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 자신의 죄과를 회개하고 옳은 길로 돌아선 신앙인들은 종종 다윗에 비유되곤 한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 삼일교회의 전 담임목사였던 전병욱 목사 역시 다윗과 같은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최근 그의 행보로 인해 기독교계는 술렁이기 양상이다.
그는 2010년 9월 한 기독교계 인터넷 매체로부터 여성도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11월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뒤 사임의사를 밝혔다. 삼일교회 측은 다음 달인 12월 그에 대한 사임을 공식 결정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사태는 마무리 된 듯 보였다. 하지만 전 목사 측은 올해 8월15일 홍익대 인근에 새교회를 창립하겠다고 밝히고 5월20일부터 창립준비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사임 후 만 1년 6개월만이다.
전병욱 목사는 삼일교회 담임목사로 재직하던 시절 '스타 목회자'로 각광 받았다. 특히 젊은 층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는 1993년 12월25일 삼일교회 3대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삼일교회는 신도가 70명 안팎인 군소교회에 지나지 않았다. 젊은 층 신도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군소교회에 불과하던 삼일교회는 전 목사 부임이후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젊은이 목회에 집중했다. 그의 설교를 들어본 성도들은 한결같이 젊은이들의 감각에 맞게 지적이면서 세련된 데다 기존 목회자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의 설교는 인터넷을 타고 전국은 물론 해외에 있는 젊은이들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는 목회 외에 왕성한 저술활동으로도 유명세를 쌓아나갔다. 부임 다음 해인 1994년 4월 '식어진 가슴에 불을 붙이라'를 시작으로 2010년 '잡초의 힘'까지 16년 동안 무려 73권의 책을 냈다. 한 해 평균 4권꼴로 책을 써낸 셈이다. 지난 2000년 기독교 인터넷서점 규장이 네티즌 1,156명을 상대로 국내외 기독교 서적 저자 선호도 조사를 실시한 결과 그는 절반 이상이 넘는 636표를 얻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의 유명세에 힘입어 삼일교회는 성장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단치 않았던 신도수가 2008년 1만 6,000명을 돌파했다. 이 가운데 1만 이상이 젊은이들이었다. 당시 신도들의 평균연령은 26.9세. 이러자 기독교계는 그와 삼일교회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기독교인은 862만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1995년 조사결과와 비교했을 때 1.6% 감소한 수치였다. 같은 기간 불교는 3.9%, 가톨릭 신도는 74.4%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3대 종교 가운데 유일하게 기독교 신자만 감소한 것이다. 무엇보다 젊은 층의 이탈현상이 현저해지고 있다는 점이 기독교계에 고민을 안겼다. 이 와중에 전해진 삼일교회의 성공은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내 전병욱 목사는 한국 교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목회자로 각광 받기 시작했고, 삼일교회는 젊은이 목회의 성공모델로 자리 잡았다.
17년간의 목회, 갑작스런 안식년, 왜?
전병욱 목사는 지난 2010년 8월 3개월 간 안식년에 들어갔다. 그의 목회 스타일에 비추어 볼 때 전격적인 행보였다. 그는 삼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던 당시 총 8차례의 예배를 거의 혼자 집례하다시피 했다. 종종 부교역자들에게 맡길 때도 있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에 속했다.
그는 예배 외에도 교회가 주관하는 행사에 빠지지 않았다. 삼일교회는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국내외 선교활동에 나선다. 대만, 일본, 캄보디아, 미얀마 등 해외 선교활동도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그는 이런 일련의 활동에 얼굴을 내밀며 성도들을 독려해 왔다.
갑작스런 안식년에 대해 성도 대부분은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성도들 사이엔 '17년간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이제 휴식을 취해야 할 때'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하지만 9월 초대형 악재가 불거져 나왔다. 악재의 진원지는 기독교 인터넷 매체인 뉴스앤조이였다. 뉴스앤조이는 9월17일 'ㅅ교회 ㅈ목사 여성도 성추행'이란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출고했다. 실명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 명확했다.
기사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이 기사는 "ㅈ 목사는 20대 초반에 ㅅ교회에 들어와서 10년 세월을 헌신했던 핵심 리더였고, ㅈ 목사의 측근이었던 30대 초반의 여성도를 2009년 11월 중순 아침 자신의 집무실에서 성추행했다"고 보도했다.
충격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기사는 "8개월가량 비밀로 감추어졌다가, 올해 7월 한 공중파 방송국 PD의 취재를 통해 드러나기 시작했고, 10개월 만인 9월 중순에 당회를 통해 일부 교인들에게 알려진 것이다"고 덧붙였다. 또 전 목사의 안식년도 실은 성추행 의혹을 가리기 위한 조치였음을 시사했다. "당회는 7월 10일 리더 모임 이후 교회 안에 떠돌던 성추행 소문에 대해 ㅈ 목사가 사실을 시인하고 사임 의사를 밝혔으나, 당회는 고민 끝에 '3개월 설교 중지와 6개월 수찬 정지'로 징계한다고 발표했다"고 적었기 때문이었다.
이러자 기독교계는 발칵 뒤집혔다. 보도가 단순한 음해성 의혹이라고 보기엔 상당히 구체적인 정황을 기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그의 성추행 의혹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그러나 정작 의혹의 당사자인 전 목사와 삼일교회 측은 침묵을 지켰다.
교회 홈페이지엔 간간히 사건의 실체에 대한 규명을 요구하는 성도들의 글이 올라오곤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게시물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삭제 됐다. 심지어 전 목사의 행태를 규탄하는 온라인상의 게시물에 대해 전 목사가 직접 나서 게시 중단을 요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광경은 11월까지 이어졌다. 이 시점은 안식년이 종료되려던 즈음이었다.
전격적인 사과, 뒤이은 논란
전 목사는 11월1일 침묵을 깼다. 그는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 "작년 가을 무렵 교회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사실이 있어, 이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당회에 지난 7월 사임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저로 인하여 상처받은 피해 성도님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저의 허물로 인해 실망하시고 충격을 받으신 삼일교회 성도님들께도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드린다"며 사과의 뜻을 내비쳤다. 끝으로 "당회(교회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에서 사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좀 더 하나님 앞에 회개와 자숙의 시간을 보내야겠기에, 교회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린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그의 사과 및 사의표명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과문이 발표되던 당일 교회 홈페이지는 접속이 폭주했다. 교계 언론들은 그의 사임을 대서특필했고 일반 언론에서도 주요 뉴스로 다뤘다. 기독교계는 반색했다. 사태진전을 지켜본 수많은 교회 관계자들과 성도들은 한국교회에 기적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했다. 비리를 저지른 목회자는 많았지만 자신의 과오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목회자는 사실상 전 목사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의문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의혹의 실체가 제대로 적시되지 않은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사건을 최초 보도한 뉴스앤조이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 같은 태도는 세간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이런 탓에 사과문 발표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성추행 의혹의 수위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언론의 오보는 이 같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전 목사의 사과문 발표 직후 어느 인터넷 매체는 "지난 가을 집무실에서 전 목사는 어깨를 주물러 달라는 말을 했고, 이에 30대 여인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온라인에 글을 게재한 데서 사건은 비롯됐다"고 보도했다. 이대로라면 전 목사는 단순히 성도에게 안마를 부탁한 것이 도화선이 돼 물러난 셈이다. 하지만 이 보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허위기사로 판명돼 삭제됐다. 그럼에도 여파는 컸다. 삼일교회 신도들은 물론 상당수 기독교인들 사이엔 전 목사가 경미한 사안으로 인해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삼일교회 측이 사임처리를 미룬 것도 논란을 키운 원인으로 작용했다. 당회는 전 목사의 사임의사를 한 달이 가까이 처리하지 않았다. 이러자 교계 안팎에서는 교회가 전 목사의 복귀를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실제 몇몇 성도들은 교회가 12월 무렵에 전 목사의 복귀를 기정사실화했다고 증언하기까지 했다. 이 와중에 전 목사의 성추행이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며 추가 피해자가 있다는 제보까지 불거져 나왔다. 이러자 전 목사의 사임을 신속하게 처리하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기독교 시민단체인 교회개혁실천연대는 2010년 12월17일 삼일교회가 속한 상급기관인 평양노회에 비공개 서한을 보내 "이번 성추행 사건은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심각한 범죄이며, 공적인 치리와 함께 범죄자에 대한 치료가 필요한 상황으로 확인된다"면서 해당 사건을 교회법 절차에 따라 신속하게 처리할 것을 촉구했다.
결국 삼일교회는 12월21일 전 목사의 사임을 공식 처리했다. 당회는 이에 앞서 피해자를 직접 만나 저간의 상황을 들었다. 당회는 공지를 통해 "어렵사리 피해자매를 직접 만나 관련내용을 확인하였고, 당회원 모두가 모인 그 자리에서 피해자매에게 직접 공식적인 사과가 이루어졌다"고 한 뒤 "담임목사의 사임을 수용하는 것이 교회와 자매, 목사님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고 사임처리 배경을 설명했다. 처리가 지체된 데 대해선 "80여명이 모이던 교회를 2만여 성도가 모이는 교회로 부흥하는데 기여한 담임목사의 사임처리를 정확한 확인 절차 없이 하는 것이 치명적인 중대한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판단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고 언급했다. 이로서 전 목사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일단락 된 것은 그와 삼일교회와의 관계일 뿐이었다.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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