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그러나 그때 피는 숨겨져 있었다
(뿌리의 배후에서 흔적없이 씻어버리고
피는 흐르지 않았다고 선전되었다
그것은 그처럼 먼 과거의 일이었다)
'남부'의 비가 대지에서 피를 씻어내리고
(그것은 그처럼 먼 과거의 일이었다)
초원의 초석이 피를 삼켜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민중의 죽음은 언제나와 마찬가지였다
마치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되었고
마치 대지에 쓰러졌던 것은 저 돌맹이들과 같았고
물이 물 위에 떨어져 내린 것과 흡사한 것이었다
'북부'에서 '남부'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사자(死者)들을 짓이기고
사자들을 불에 태워 어둠 속에 매장하였다
밤을 틈타 감쪽같이 해치우기도 하고
탄광의 굴 속에 던져버리기도 했다
뼈는 바다 속에 내던져버려서
이제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 사자들이 어디에 있는가를
그 사람들은 무덤도 없이
그 사람들은 조국의 뿌리에 흩어져 있다
고문으로 손가락이 구부러지고
심장은 총알로 구멍이 뚫린 채
칠레의 미소를 띠고 있는
초원의 용사들
지금은 소리도 없는 지도자들
살인자들이 시체를 어디에다 묻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사자들은 대지에서 나와
흘린 피를 되찾을 것이다
민중의 부활로
범죄는 라플라사의 한복판에서 저질러졌다
민중의 맑고 깨끗한 피를 무성한 숲도 숨기지 못했다
초원의 모래도 빨아들이지 못했다
그 누구도 이 범죄를 숨기지 못했다
범죄는 조국의 한가운데서 저질러졌던 것이다.
- 파블로 네루다, <학살>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는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민중의 편에 서서 작품활동을 해왔다. 그는 사회주의 정권의 수반이었던 아옌데와도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아옌데는 쿠데타의 와중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그 역시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피노체트는 네루다의 사후 그의 거처를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칠레의 쿠데타에 경악했던 세계 여론은 피노체트의 야만적인 행위에 다시 한 번 치를 떨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 무자비한 철권통치를 자행했던 독재자에서부터 칠레의 오늘을 있게 한 설계자(Architect)라는 칭송까지....
피노체트 집권 이후 칠레 경제가 순조롭게 발전해 나가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이 조국의 심장부에서, 그것도 백주에 저지른 가혹한 살상행위에 대해선 역사의 심판이 불가피할 것이다.
* 덧붙이는 글
네루다는 영화 '일 포스티노/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에서 네루다 역은 프랑스의 중견 배우 필립 느와레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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