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언로(言路)가 막혀 있을 때, 풍자와 해학은 단순히 웃음의 의미를 넘어 정보 소통과 억눌린 민초들의 울분을 해소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카톨릭의 부패가 극에 달해 급기야 종교개혁이 임박한 시절,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 폰 로테르담은 풍자를 통해 카톨릭의 전횡을 신랄하게 비꼬았습니다. 그 작품이 바로 '바보예찬'입니다. 에라스무스는 바보의 입을 통해 썩을 대로 썩은 교회의 부패상을 풍자하는 한편,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각인시켰습니다. 에라스무스가 지핀 개혁의 불씨는 독일의 마르틴 루터에게 이어져 급기야 종교개혁을 일궈내기에 이릅니다.
높은뜻연합선교회 김동호 목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꼼수'에 대한 평을 올린 것이 입길에 오르고 있습니다. 전 나꼼수를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한 번 들어봐야지 들어봐야지 하고 있다가 들어봤는데, 참 재밌었습니다. 오가는 말들 속에 공중파 라디오 방송에서는 차마 할 수 없는 거친 표현들이 여과 없이 흘러 나오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나꼼수에서 다루는 화제거리는 그저 웃어 넘길수만은 없었습니다. 지금 한창 쟁점이 되고 있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부정선거 의혹은 나꼼수에서 가장 먼저 제기됐었습니다. 이외에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논란도 주제로 올랐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의 1억원 피부과 출입과 나 후보 남편인 김재호 판사의 수사외압, 인천공항 매각 등등 이 사회의 뇌관과도 같은 이슈들이 다뤄졌습니다. 또 EBS에서 중용 특강을 하고 있는 도올 김용옥 선생은 나꼼수에 출연해 "외압으로 인해 방송 중단위기를 맞았다"는 폭탄선언을 했고, 이 방송을 들은 청취자들 사이에 도올 김용옥 선생의 중도하차 반대 여론이 들끓어 결국 중도하차는 없었던 일이 됐었던 적도 있습니다.
전 나꼼수가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해주고 있는 기능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권들어 언론은 사실상 정권홍보의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정권에 부담이 될만한 민감한 이슈들은 유력 신문이나 방송의 헤드라인에서 속속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대신 G20 정상회담, 4대강, 한미FTA 등등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국정 과제들에 관한 기사들은 과도할이만치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행여, 언론사 내부에서 다소 정권에 편향된 보도 태도에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하면 가차 없는 보복이 이어졌습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모두 180명의 언론인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 가운데 8명이 해고를 당했고, 각각 30명과 32명이 정직과 감봉 처분을 받았습니다. 경고 · 근신과 출근정지는 각각 109명과 1명입니다. 현재 재판중인 언론인만 61명입니다. 가히 언론의 암흑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 시절입니다.
사람들이 나꼼수에 열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나꼼수가 바로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비록 토크쇼 패널들의 입에서 뱉어지는 말이 거칠고, 다소 상스러운 것이 거슬리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김동호 목사는 아주 작심한 듯 글을 쓴 것 같습니다. 자신의 글 말미에 '오늘 한 번 죽어보자'고 썼으니까요. 김동호 목사의 글 가운데 핵심적인 대목은 다음과 같다고 봅니다.
'나는 꼼수다'는 악을 악으로 이기려고 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는데 말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37절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여 주신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빈정거림과 욕은 이에서 지난 것이다. 옳지 않은 것이다. 좋지 않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 악한 것이다. 옳지 않은 것으로 옳지 않음을 지적하고, 나쁜 것으로 나쁜 것을 판단하고, 악한 것으로 악한 것을 고발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나는 꼼수다'가 세상을 또 다른 모습으로 병들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동호 목사의 글을 읽고 허탈감이 밀려왔습니다. 김 목사는 빈정거림과 욕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김 목사는 국민의 눈과 귀가 한 쪽만을 보고 듣기를 강요당하는 지금의 현실은 간과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단편적인 대목만을 근거로 나꼼수가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선 당대의 종교권력자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아"란 극언을 서슴치 않으셨습니다. 이 얼마나 무례한 말입니까? 신성한 종교권력자들에게 독사의 자식이라니요. 당시 명예훼손 관련 법이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명예훼손으로 기소당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김 목사의 말대로라면 예수 그리스도 역시 악을 악으로 이기려는 우를 범한 것입니다. 김 목사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권력의 보이지 않는 농간에 국민의 눈과 귀가 막히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달달한 말만으로 이 악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말입니다.
진정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요? 조롱? 빈정거림?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은 도외시한 채 조롱과 빈정거림을 악하다 정죄하면서 은근히 거룩함을 내세우는 종교의 위선, 바로 그것이 진정 세상을 병들게 하는 암세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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