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저것이 하마터면 세계를 온통 지배할 뻔했었지
다행히도 민중들이 저것을 제압했어. 하지만 난
자네들이 축배를 들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어
저것이 기어 나온 자궁이 아직도 생산능력이 있기에
- 베르톨트 브레히트, <전쟁교본>
나치는 독일의 구(舊)귀족들이 지니고 있던 '전근대적인' 보수주의-反유대주의-아리안 우월주의를 '근대적인'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에게 관철시켜 나갔다. 영국의 역사가 E. J. 홉스봄은 이들을 '반혁명의 혁명가'라고 불렀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에 맞서 미디어에 사용된 사진을 통해 나치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드러낸다. 그러면서 브레히트는 '사진'이라는 시각요소가 반드시 진실만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걸 우회적으로 꼬집는다. 그 작품이 바로 <전쟁교본>이다.
위에 인용한 시는 <전쟁교본> 맨 마지막에 인용된 시다. 브레히트는 나치를 패퇴시킨 주역들은 바로 전체주의에 반대해 봉기한 전세계 민중들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저것이 기어나온 자궁이 아직도 생산능력이 있기에"라고 한 마지막 구절 속에 무척 의미심장한 함의를 불어 넣었다.
얼핏 대중들은 히틀러를 수반으로 하는 나치가 폭력을 통해 권력을 쟁취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치는 엄연히 33번의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권력을 거머쥐었다. 독일 국민들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 나치의 선전구호에 열광했다. 괴테, 실러 같은 시성(詩聖)을 배출한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다행히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는 패퇴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극우주의의 유령은 도처를 배회하며 나치가 패망한지 반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에서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독일에서 동서독의 통일 이후 신나치가 발흥해 여전히 세를 과시하고 있는 건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브레히트가 일갈했던 "저것이 기어 나온 자궁"이란 바로 나치의 발흥을 있게 한 기본토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생산능력이 있기에"라는 대목은 나치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토양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경제위기는 극우주의가 창궐할 좋은 온상이다. 나치는 1932년 전세계에 불어 닥친 경제 대공황을 계기로 본격적인 세(勢)불리기에 들어갔다. 비근한 사례로 지난 10여 년 간 경기침체에 시달려온 일본에서 극우주의 정치인들이 전면에 등장한 건 단순히 우연만은 아니다.
현집권세력을 있게 한 토양, 무시해선 안 돼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지금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정부여당인 한나라당 역시 '선거'를 통해 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했다.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전정권의 경제실정(失政)이 원인이 됐다. 그렇지만 이 정권이 표방하고 있는 이념과 행태는 여러모로 극우주의를 빼닮았다. 특히 미디어를 정권홍보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TV, 방송, 라디오 등 전통매체가 정보를 독점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블로그, 카페, 트위터 등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늘 열려있다는 게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명박 정권의 임기는 앞으로 1년 남짓, 그러나 벌써부터 권력기반이 급속히 약화되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무소속 시민후보인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된 일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야권이 단일화만 이룬다면 정권교체는 떼놓은 당상이라는 전망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갈파했듯 "저것이 기어 나온 자궁"이 아직도 왕성한 생산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율을 보자. 집권여당인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의 투표율은 무려 46%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이 노무현 前 대통령 임기 초반 존폐의 위기를 겪었다는 사실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2004년 노무현 前 대통령 탄핵정국 당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거센 역풍을 맞았다. 대통령 탄핵으로 여론은 들끓었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임박한 총선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그러나 탄핵정국의 직격탄은 민주당의 몫이었다. 한나라당도 꽤 큰 타격을 입긴 했지만 가까스로 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앞세워 정권을 찾아오는데 성공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마침내 의회 다수당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요약하면,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브레히트의 표현대로 한나라당을 있게 한 자궁이 아직 생산력을 갖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단 말이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염증을 느끼는 도수에 비례해 정권교체를 이뤄내자는 열망은 강해져만 간다. 그러나 축배를 준비하기엔 아직 이르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을 있게 한 자궁의 생산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2012년 정권교체를 이뤄냈다손 치더라도, 언제고 한나라당의 기반세력들은 끊임없이 그 생산력을 과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민심이 들끓을 조짐이 보이면 바로 그 틈을 노릴 것이 분명하다. 지금 이명박 정권처럼, 그리고 과거 전체주의 정권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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