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에 얽힌 오해와 진실
ⓒ luke wycl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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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다. 특히 그의 소속당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스스로를 링컨의 후예라 자부한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링컨 기념관을 가보니, 미국인들의 존경심이 엿보인다.
이곳엔 링컨의 대형 조각상이 있는데, 우리말로는 기념관이지만 영어로는 ‘사원(Temple)’이란 표현을 쓴다. 실제 외형은 사원 같이 생겼다. 링컨 조각상 위로는 이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In this Temple as in the hearts of the people for whom he saved the Union. The Memory of Abraham Lincoln is enshrined forever.
연합을 구한 그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링컨은 이 사원에 영원토록 안치돼 있다.
그는 간단 명료한 단어로 청중을 매료시킬 줄 아는 연설가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란 명문이 들어간 게티스버그 연설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집권시기는 미국이 노예제도를 두고 남부와 북부가 첨예한 갈등을 벌이던 시기와 맞물린다. 남부와 북부의 갈등은 결국 남북전쟁으로 비화됐고, 링컨은 전쟁지도자로서 남부를 제압하고 연방을 지켜낸다. 남북전쟁 결과 노예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여기서 링컨이 위대한 대통령으로 추앙 받는 이유가 노예제도 폐지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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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노예제도에 반대했지만, 노예제도 폐지가 주 관심사는 아니었다. 노예제도가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된 건 맞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이유에서였다. 흑인 노예는 참정권이 원천적으로 배제됐다. 단 노예에겐 1인당 2/3에 상당하는 참정권이 배정됐는데, 참정권은 궁극적으로 노예 소유주에 속했다. 즉, 50명의 노예소유주는 30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산업이 활발했던 북부는 궁극적으로 노예가 필요하지 않았고, 1인 1표의 보통선거권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봤다. 이에 북부는 노예 소유주들이 흑인 노예의 참정권을 행사하는 걸 굉장히 부도덕하게 봤다. 더구나 남부 노예의 참상은 악명 높았기에 남부를 바라보는 북부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해리엇 비처 스토우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북부가 남부를 바라보는 시선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영토의 확장은 남부와 북부의 갈등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었다. 새로이 편입되는 주가 노예주냐, 자유주냐에 따라 정치적 무게중심이 옮겨질 것임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남부와 북부의 정치적 갈등은 전쟁으로 비화됐다. 남북 전쟁을 ‘시민전쟁(Civil War)’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링컨은 노예폐지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보다 신생 미 연방의 유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 링컨은 전운이 감돌던 시기에 대통령에 취임했다. 링컨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부에도 남부에도 나중은 어떻게 되든 연방을 탈퇴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사람, 또한 그러기 위한 구실이면 무엇이든 환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겠습니다. (중략) 전국의 동포 여러분 ! 조용히 이 중대한 문제를 잘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가치 있는 것은 세월이 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불만을 품고 있는 동포 여러분 ! 내란 발발의 열쇠는 내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손에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을 공격할 생각이 없습니다.”
링컨의 노력에도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났고, 이후 미국은 북부가 주도권을 잡았다. 그러나 링컨은 연방의 재건에 온 역량을 집중했다. 특히 링컨은 연방유지를 위해 관대한 평화조건을 내걸었다. 즉, 연방존속과 노예제도 폐지가 포함된 조건에 남부가 동의만 하면 언제든 평화조약에 서명하고자 했다. 물론 남부는 전쟁의 와중과 그 이후 패배에 따른 지독한 피해의식에 시달렸지만 말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링컨이 아니었다면 신생 미 합중국 연방의 운명은 어디로 향할지 아무도 몰랐다. 미국인들이 링컨을 존경하는 이유도 오늘날의 ‘미합중국(The United States)’을 있게한 대통령이라는 데서 비롯됐다.
앞서 언급했듯 공화당 출신 대통령은 링컨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가장 최근에 존경받는 공화당 대통령이라면 단연 로널드 레이건이다. 그러고 보니 현 도널드 트럼프도 공화당 출신이다. 링컨이 트럼프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2017.04.06. 링컨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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