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숨소리로 풀어낸 인간 존재의 강인함
골든글러브 3관왕 <레버넌트>... 디카프리오, 일생일대 연기 펼쳐
“이 영화는 5년 동안 나의 꿈이었다. 육체적으로 혹독한 시련을 거치면서 정신적인 부분에 의지하게 되는 모피 사냥꾼들의 삶을 파헤치고 싶었다.”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연출한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이 밝힌 연출의 변이다. 이냐리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 존재가 어디까지 비참해질 수 있으며, 동시에 어디까지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를 본 뒤 든 느낌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숨이 멎을 지경이다.' 이야기의 얼개는 무척 단순하다. 주인공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모피 사냥꾼이다. 백인인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 여인과 결혼해 호크라는 이름의 아들을 뒀다. 그의 마음 속엔 생채기가 그어져 있다. 백인들의 학살로 아내를 잃어서다. 먼저 아내를 떠나보낸 그는 생의 모든 희망을 아들에게 건다.
그는 어느 날 수색 중에 곰에게 습격을 당해 온 몸이 찢긴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일행은 원주민 부족인 아리카라 족의 공격을 받아 쫓기는 신세다. 모피 사냥꾼 일행을 지휘하던 지휘관 앤드류 헨리(돔놀 글리슨)는 핏제럴드(톰 하디)와 브리저(윌 폴터)에게 글래스를 맡기고 퇴각한다.
핏제럴드는 글래스가 못내 못마땅하다. 언제 원주민 부족의 공격을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오히려 짐만 될 뿐이어서다. 그래서 그를 죽이려 든다. 이러자 아들인 호크는 거칠게 저항한다. 핏제럴드는 바로 본색을 드러낸다. 호크를 살해한 뒤 글래스마저 생매장한다. 이 대목에서부터 이야기 흐름은 요동치기 시작한다.
글래스는 자신의 눈 앞에서 아들이 살해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는 온 몸으로 울분을 토해낸다. 그에 맞선 핏제럴드도 만만치 않았다. 살기위해 발버둥 치는 글래스를 제압하고 자리를 뜬다.
극단적 근접촬영, 불꽃 튀는 연기대결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강점은 촬영이다. 촬영감독인 엠마누엘 루베츠키는 극단적인 근접 촬영으로 배우들의 거친 숨소리, 그리고 감정 변화의 동선을 잡아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하디의 얼굴을 뒤덮은 수염의 질감, 그리고 다른 배우들이 연신 뱉어내는 입김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촬영 솜씨는 탁월하다. 휴 글래스가 곰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 그리고 그가 아들을 잃는 장면에서 입안의 분비물을 죄다 토해내며 지르는 괴성은 곧장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그뿐만 아니다. 빛의 사용은 교과서적이다. 장면 하나하나가 흡사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 실린 사진들을 죽 이어 보여주는 느낌이다. 루베츠키는 전기가 없는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 자연광만 사용했다. 루베츠키의 말이다.
“빛과 그늘로 가득한, 명암 기법을 이용한 그림처럼 강렬함을 살리고 싶었다.”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레버넌트>에서 일생일대의 연기를 펼친다. ⓒ 20세기폭스코리아
▲ 톰 하디는 <레버넌트>에서 특유의 표정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 20세기폭스코리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하디의 연기는 영화의 백미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2010년 작 <인셉션>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두 사람은 이번 작품에서는 적으로 만난다. 두 사람의 대결은 보는 이들의 숨을 멎게 만들만큼 강렬하다. 특히 휴 글래스로 분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일생일대의 연기를 펼친다.
그는 데뷔 당시만 해도 앳된 외모를 가진 배우로만 여겨졌다. 사실 <토털 이클립스>,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 <아이언 마스크> 등등 초기작들은 미소년 이미지를 내세운 것들이어서 이 같은 평가는 일정 수준 타당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먼저 마틴 스코세지 감독과 함께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 등을 찍으며 연기력을 다져 나갔다. <에비에이터>로는 제77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르기까지 했다. 그러다 에드워드 즈윅의 2007년 작 <블러드 다이아몬드>에 출연하면서 '꽃미남' 이미지와 완전히 결별했다.
그가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맡은 역할은 전직 용병이자 목적을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이아몬드 밀매 업자 대니 아처. 그는 이 역으로 <에비에이터>에 이어 또 다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후 <인셉션>, <J. 에드가>, <위대한 개츠비>,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등에 출연하며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가 <레버넌트>에서 연기한 휴 글래스는 극한상황임에도 오로지 생존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캐릭터다. 묘하게도 휴 글래스의 투쟁은 환골탈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그의 연기이력과 겹친다.
상대역인 톰 하디의 연기도 명불허전이다. 특히 표정연기에 관한 한 경지에 오른 모습이다. 그의 표정연기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2013년 작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빛을 발했다. 악당 베인 역을 맡았던 그는 브루스 웨인 / 베트맨과 달리 줄곧 복면을 쓴 채 등장해야 했다. 따라서 얼굴 전체가 드러날 수 없었고 오로지 눈빛과 가면 밖에 약간 드러난 얼굴 표정으로 연기해야만 했다. 그는 이토록 고난도의 표정 연기를 매끄럽게 소화해 냈다.
그의 표정연기는 조지 밀러의 2015년 작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에서 다시 빛났다. 그는 초반부에서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처럼 복면을 써야 했다. 이때도 그는 오로지 눈빛만으로 강렬한 인상을 표현해 낸다. 이 작품 <레버넌트>에서 그가 보여준 표정 연기는 세련미를 더한 모습이다. 그가 분한 핏제럴드는 비록 가면을 쓰지는 않았지만 텁수룩한 수염과 머리 부분의 상처로 인해 인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다. 그는 그간 쌓은 내공으로 핏제럴드를 표현해 내는데 성공한다.
화룡점정,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의 연출력
▲ <레버넌트> 연출자 알레한드로 이냐리투(왼쪽)와 주연 배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20세기폭스코리아
알레한드로 이냐리투의 연출은 화룡점정이다. 그는 <21그램>, <바우티플>, <버드맨> 등 일련의 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의 내면을 포착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해 왔다. <레버넌트>도 그 연장선상이다. 주인공 휴 글래스는 극한의 지경까지 내몰린다. 그러나 그는 온갖 역경을 뚫고 살아남는다. 그가 이 생의 끈을 놓지 않은 근본적인 원동력은 죽은 아내에 대한 기억, 그리고 복수심이었다. 이냐리투 감독은 생사의 희미한 경계를 넘나드는 글래스의 여정을 특유의 필치로 묘사해 낸다.
이냐리투는 한 발짝 더 들어가 아메리카 대륙의 초기 역사를 건드린다. 이 영화는 모피 사냥꾼들의 이야기다. 모피 교역은 금광, 석유산업이 태동하기 이전 이뤄졌던 경제활동이었다. 이냐리투 감독은 휴 글래스의 복수극을 통해 본격적인 산업이 태동하기 이전단계서부터 이미 아메리카에서는 백인들의 탐욕이 횡행했음을 드러낸다.
이 같은 연출은 이냐리투 감독이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적 자양분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각각 콜롬비아와 칠레 출신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이사벨 아옌데는 현실과 환상을 뒤섞어가며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을 썼다. <백년의 고독>과 <영혼의 집>이 이들의 대표작이다. 두 작품에서 칠레의 군부 쿠데타를 묘사하는 대목은 소름끼칠이 만치 현실적이다. <레버넌트> 역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고, 때론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백인들의 탐욕을 그리는 대목에서는 무섭도록 현실과 맞닿아 있다.
영화는 거친 휴 글래스의 거친 숨소리로 끝을 맺는다.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결말이다. 영화는 끝났지만 아직도 숨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아무래도 이런 영화는 앞으로 오래도록 다시 못 볼 것 같다.
덧붙이는 글
<레버넌트>는 현지시간으로 10일 치러진 제73회 골든글러브 작품상, 감독상(알레한드로 이냐리투), 남우주연상(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주요 3개 부문상을 수상했다.
전통적으로 골든글러브는 2월에 있을 아카데미 영화제의 향방을 가늠할 가늠자 역할을 해왔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에서 혼신의 연기를 보여줬다. <에비에이터>, <블러드 다이아몬드>,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로 후보에 올랐다가 번번이 고배를 마신 그가 이번에는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쥘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오마이뉴스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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