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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목기가 만들어지기까지....

남원은 예로부터 장인들의 고장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특히 목기는 남원을 대표하는 특산품이다. 남원의 목기가 명성이 자자한 이유는 원자재, 기술인력, 수요가 잘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결과다. 


원자재인 나무는 지리산 자락에서 풍부하게 얻을 수 있었고, 장인들은 나무를 정성스레 깎고 다듬고 칠했다. 그러나 남원의 경계선을 넘기엔 이 두 가지 요소만으로 부족하다. 

원래 목기는 남원의 대찰인 실상사 스님들이 발우(부처의 자비가 담긴 식기, 사진)를 만든 것에서 유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님들의 손기술은 지리산 자락의 민간에게 전해지기 시작했다. 현대 언어로 풀이하면 사찰의 목기 제조 기술이 민간으로 이전된 것이다. 민간 기술자들은 남다른 솜씨로 목기를 만들어 냈다. 


지리산 자락은 남원 실상사를 비롯해 구례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문수사 등 대찰을 품고 있다. 이 사찰들은 승려들로 넘쳐 났고, 남원의 목기는 승려들에게 꾸준히 팔려 나갔다. 또한 우리 민족은 고유의 제사문화를 유지, 계승해 온 민족이다. 그런데 제사를 지내려면 제기가 필요했다. 이렇게 남원의 목기는 사찰과 민간에서의 꾸준한 수요 덕에 지역 경계선을 넘어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산업화 이후 목기는 수차례 거센 도전을 받았다. 70년대와 80년대까지는 플라스틱 제품이 밀려들어왔다. 그러던 것이 웰빙 바람을 타고 제 위상을 되찾는 듯싶었다. 한 차례 위기를 넘기자 이번엔 중국산 제품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남원의 장인들은 끊임없는 연구와 투자, 기술개발로 위기를 슬기롭게 해쳐 나갔다. 새로운 옻칠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목기의 용도를 공예품에서 커피잔과 받침 접시를 비롯해 다기세트, 액자, 찻상, 수저, 밥그릇, 접시, 반찬그릇, 전통장, 컵 등 생활용품으로 다변화해 나갔다. 기술을 배우려는 인력도 꾸준히 공급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비추어 볼 때 남원 목기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 2014.03.18. 전북무형문화재 18호 박강용 님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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