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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배우의 작품활동, 언론에 의해 폄하될 일인가?

배우의 작품활동, 언론에 의해 폄하될 일인가?

- 크리스천 베일, 그리고 송강호 


크리스천 베일은 어린 시절 스티븐 스필버그의 '태양의 제국'에 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굴곡 없는 성장시절을 보낸 뒤 '아메리칸 사이코', '이퀼리브리엄'을 통해 성인 연기자로 신고식을 치렀다. 특히 그가 '이퀼리브리엄'에서 보여준 액션과 감정연기는 일품이었다. 그는 전작을 발판삼아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 더 비긴즈'에서 타이틀 롤인 배트맨 / 브루스 웨인으로 캐스팅되기에 이른다. 사실 '이퀼리브리엄'을 본 이들이라면 베일이야 말로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방황하는 브루스 웨인의 캐릭터를 소화할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임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는 전작에 이어 '배트맨 - 다크 나이트'에 출연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물론 조커 역을 맡은 히스 레저가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배트맨 연기가 아니었다면 조커 역시 빛이 바랬을 것이다. 그는 이 와중에 크리스토퍼 놀란의 '프레스티지'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다졌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다크다이트' 개봉 직후 어머니와 누이를 폭행하는 사고를 저질렀고 이 일로 인해 경찰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경찰은 무혐의 처리했지만 그는 연기 생활 최대 위기에 몰렸다. 


브루스 웨인이 부모 잃은 아픔을 딛고 수퍼 히어로로 거듭 났듯 그 역시 고난을 계기로 더 한층 성숙해졌다. 그는 마이클 만 감독의 '퍼블릭 에너미'에 출연해 조니 뎁과 연기 대결을 펼치는 한편 '파이터'에 출연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 작품 '파이터'에서의 연기는 배트맨 / 브루스 웨인으로만 각인됐던 이미지를 완벽하게 탈피하게 한 혼신의 연기였고 그는 이 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거머줬다. 

* '배트맨 -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의 크리스천 베일


그는 이어 장이머우 감독의 '진링의 13소녀'에 출연해 또 한 번 녹록치 않은 연기를 뽐냈다. 아역 데뷔작 '태양의 제국'에서 어린 시절 일본군에 억류된 영국 소년 역을 연기한 그는 장성해서 다시 한 번 전화에 휩싸인 중국에 뛰어들어 일본군의 만행에서 어린 소녀들을 지키는 존 밀러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다. 그는 여세를 몰아 배트맨 리부트 3부작의 완결편인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출연해 베인과 건곤일척의 접전을 벌인다. 무엇보다 '파이터'에서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출연한 시기는 2010년과 2011년까지 불과 1년 전후한 시기였다. 대단한 저력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자 가운데 한 명인 송강호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그는 올 한 해 동안 '설국열차', '관상'에 이어 '변호인'에 잇달아 출연하며 녹록치 않은 연기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라는 신문이 딴지를 걸고 나섰다. 이 신문은 10월30일자 기사를 통해 "보통 특1급 배우들은 1년에 한편 정도의 영화에 출연하는 정도"라면서 "때문에 일각에서는 송강호가 '급전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적었다. 

* 송강호 (2009)


예술인들의 작품 활동은 정해진 주기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갑자기 예술혼이 내면속에서 치밀어 올라 다작을 남기는 경우도 있고, 괴테의 파우스트 처럼 60년이 걸려 한 작품이 나오는 수도 있다. 즉, 배우가 1년에 한 편 출연하든 대작에 잇달아 출연하든 언론이 나서서 딴지를 걸 주제는 아니란 말이다. 더구나 '급전' 운운하면서 배우의 작품활동을 돈벌이로 격하시키는 건 정도가 지나치다. 이에 대해 한 시사주간지는 어느 영화제작자의 언급을 인용해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설국열차'와 '관상'이 11월 초 런던에서 열린 한국영화제 개막작에서 제외됐다고 보도했다. 그의 작품 활동이 정권의 심기를 거슬려 보이지 않게 불이익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출연한 신작 '변호인'의 시나리오는 이 같은 추측이 사실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이 영화는 故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재구성한 작품이고, 송강호는 타이틀 롤인 송우석 역을 맡아 열연했다. 법정 드라마인 이 작품에서 송우석이 변론을 펼치는 장면은 고인의 영혼을 느끼게 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는 시사회를 통해 "감히 제가 그 분(故 노무현 대통령)의 열정적이고 치열한 삶을 감히 다 표현했겠냐마는, 최소한 나의 작은 진심을 담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 볼때 현 정권이 이 영화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순탄치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미 정부발표에 의문을 제기한 '천안함 프로젝트'가 수난을 당하지 않았던가?


정작 송강호 본인은 "급전은 항상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엔 아닌 것 같다"며 조선일보 보도를 "영화에 대한 애정"이라고 받아 넘겼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무어냐면 '한 배우의 자유로운 작품 활동이 정권의 심기를 거스른다는 이유만으로 정부에 우호적인 언론에 의해 폄하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가?'하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