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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Talk

권력의 폭력에서 자유로울 자 누구인가?

권력의 폭력에서 자유로울 자 누구인가?

- '효자동 이발사', 그리고 국가폭력 


영화 '변호인'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던 송강호는 2004년 '효자동 이발사'라는 또 한 편의 시대극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 효자동 이발사 (2004)


그는 이 작품에서 이발사 성한모 역으로 출연하는데, 우연히 역사의 물줄기로 빨려 들어간다는 점에서 '변호인'의 송우석과 닮은꼴이다. 성한모는 효자동에서 조그만 이발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는 어느 날 시골에서 상경해 조수로 일하던 김민자(문소리 분)를 건드려 임신시키고 그래서 그녀와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 마침 그의 이발소가 청와대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던 터라 그는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이승만이 4.19로 쫓겨나는 장면, 그리고 군인들이 탱크를 몰고 청와대로 진격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는 그러던 어느 날 이발소 주위에 수상한 사람이 서성이는 걸 보고 혹시 간첩이 아닐까 싶어 다짜고짜 붙잡고 경찰을 부른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그 수상한 사람은 중앙정보부 요원이었고, 그래서 그는 청와대로 불려가 중정부장에게 정강이를 차인다. 


그럼에도 청와대 '윗분'들은 그를 어여삐 봤는지 그를 이발실장으로 임명해 각하의 미용을 담당하게 한다. 투철한 신고정신 덕분에 동네 이발소 주인에서 일약 청와대 이발실장이 된 것이다. 그는 그야말로 지근거리에서 각하를 수행하며 스타일 관리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다. 각하의 신임도 두터워 미국 방문길에 그를 대동하기까지 한다. 


이렇듯 성한모는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사회는 갈수록 불안해져만 갔다. 그러던 차 그는 아들 낙안이가 커가면서 자꾸 대들자 관계 당국에 아들을 넘긴 뒤 버릇 좀 잘 고쳐 달라고 부탁한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일까? 하루 이틀 정도 지나면 돌아올 것만 같았던 아들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이러자 청와대의 힘센 분들에게 줄을 대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아들을 찾아오지만, 아들은 전기고문을 당해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다. 이러자 성한모는 그동안 쌓인 분노를 한 순간에 폭발 시킨다. 이 대목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보는 이들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든다. 


이 장면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아무리 정권에 충성을 바쳐도, 심지어 권력의 핵심에 있어도 정권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정권의 공안몰이, 20년 지난 지금도 여전 


국정원과 검찰이 애꿎은 조선족 남매를 간첩으로 몰았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편 91년 노태우 정권이 강경대 치사사건으로 촉발된 분신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기획한 '강기훈 유서 대필사건'에 대해 법원이 지난 2월13일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건 사이에 23년의 시간차가 존재하지만 본질은 하나다. 바로 국가권력의 폭력에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종북좌파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가 하는 일에 토 다는 일 자체를 금기시 여기며 보수정당을 찍는 게 애국이라고 믿는 일반 시민들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무지는 변하기는커녕 오히려 퇴행해 가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효자동 이발사'의 성한모는 뒤늦게 권력의 부도덕함을 인식하고 "야 이 나쁜 놈들아"고 절규한다. 


여전히 정부가 하는 일을 비판하는 건 국민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소시민들이 상당수다. 오로지 공안몰이에 기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해온 부패세력들에게 이런 소시민들의 무지는 든든한 자산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성한모처럼 절규하는 소시민들이 하나 둘 늘어갈 때 이 나라를 움켜쥐고 있는 부패세력들의 설 자리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효자동 이발사 (2004)

8.1
감독
임찬상
출연
송강호, 문소리, 윤주상, 이재응, 조영진
정보
드라마 | 한국 | 116 분 | 2004-05-05
글쓴이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