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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Topic] 롱런 발판 마련한 아베 총리

롱런 발판 마련한 아베 총리

극우적 의제와 경제회복 사이에서 현명한 선택해야


* 아베 신조 日 총리(출처 : 연합뉴스)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공명당 연립내각이 지난 7월21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일본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하면 자민당과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은 선거대상인 121석 가운데 각각 65석과 11석을 확보해 참의원 의석 242석 가운데 과반을 훌쩍 넘는 135석을 차지했다. 자민당 연립내각은 지난 해 말 중의원에 이어 참의원까지 과반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힘입어 아베 총리의 권력기반은 한층 공고해졌다.  


아베 총리의 승리는 양적완화, 재정지출 확대, 규제개혁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승리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는 2012년 집권하자마자 아베노믹스를 공격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특히 엔화 공급 확대는 엔저로 이어져 2013년 1/4분기 수출은 전분기 대비 3.8% 증가했고 개인지출도 0.9% 늘어났다. 개인소비증가에 힘입어 1/4분기 일본 경제는 3.5% 성장세를 기록했다. 주식시장의 움직임은 더욱 고무적이었다. 주가는 지난 5월까지 55%로 급등했다. 야당인 민주당의 지리멸렬도 자민당의 승리에 기여했다. 일본의 유력 경제신문인 <니혼케이자이신문>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일본의 거대 야당은 민주당이 아니라 주식시장이다"고 꼬집기까지 했다. 


경제정책 성공에 힘입어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70%대로 치솟았다.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퇴임 이후 일본의 역대 총리들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물러났다. 가장 긴 재임기간은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의 482일에 불과했다. 총리의 잦은 교체는 내각을 떠받치는 여당이 중의원과 참의원 모두를 장악하지 못한, 이른바 '네지레(비틀린) 국회'에 따른 결과였다. 아베 총리는 경제 정책에 힘입어 이 같은 구도를 청산하는데 성공했다. 더구나 향후 2013년까지 선거가 예정돼 있지 않아 지지율의 급락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아베 총리는 롱런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07년 지지율 하락을 이유로 사임했던 아베로서는 명예회복에 성공한 셈이다. 


아베 총리는 승리에 고무된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많은 국민이 확실한 정치, 안정적인 정치 속에서 경제정책을 추진해 나가달라는 목소리를 보낸 것으로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경제정책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이에 국민이 지지해 준 것"이라면서 "이제 국민이 그 혜택을 느끼고 싶어 하며 경제는 정말로 개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베 정권 앞날 놓고 전망 엇갈려 


아베 정권의 앞날에 대한 전망은 낙관과 비관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들은 아베 총리의 승리에 경계심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경계심은 아베 총리의 극우주의 성향에 기인한다. 


* 아베 총리는 731부대를 연상시키는 훈련기에 탑승해 주변국들의 반발을 샀다(출처 : 로이터)


아베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침략행위를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한편, 항공 자위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았던 731부대를 연상케 하는 훈련기에 탑승해 주변국들의 반발을 샀다. 그의 극우주의 성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미 외교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즈지와의 인터뷰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인들은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된 전몰장병들을 추모하지 않은가? 미국 대통령도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한다. 나 역시 일본 총리로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이다"며 "일본의 지도자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센카쿠(중국명 다오위다오) 열도 인근 섬을 방문해 중국을 자극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은 아베 내각이 군사대국화를 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베 내각은 7월9일 자위대의 지위 강화 및 미국과의 협력 증진을 골자로 하는 '2013년판 방위백서'를 승인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관방장관은 서문을 통해 "일본의 안보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들은 현저할 만치 심각해졌다"며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의 생명과 자산, 영토, 영공, 영해를 수호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아베 내각은 올해 국방예산을 전년 대비 0.7% 인상한 4조 6,800만 엔으로 책정했다. 일본의 방위예산이 증액된 건 11년 만의 일이었다. 


아베 내각은 백서를 통해 남북한 및 중국을 차례로 자극했다. 아베 내각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을 향해 "중국이 현상을 변화시키려고 폭력 등 고압적인 전략에 기대고 있다. 이런 위험한 행위는 원치 않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북한을 향해선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은 국제사회에 현실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으며, 이에 국제사회는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한데 이어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해 한국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무엇보다 이 백서에서 눈에 띠는 대목은 자위대의 위상 강화였다. 아베 내각은 향후 자위대의 역할 확대를 위해 미국과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재검토할 방침임을 천명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월스트리트 저널 아시아판은 "이번 백서에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에 포함될 세부적인 논의들이 많이 거론되지는 않았다"고 전제한 뒤 "일본 자위대의 성격을 현저하게 바꿀 두 가지 요소, 즉 일본 영토 밖에 있는 적 기지에 대한 선제공격 능력 개발 및 미 해병대와 유사한 상륙작전 부대 창설 등이 가장 주목되는 대목이다"고 지적했다. 


자위대 위상 변화는 자연스럽게 집단자위권 도입 움직임을 부추길 전망이다. '동맹국이 공격을 받았을 때 적대국을 공격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집단자위권은 일본 정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만약 집단자위권이 도입되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해 미군이 공격을 받으면 일본 자위대는 미군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제한적인 개입이 가능해진다. 일본 정치권 안팎에서는 권력기반을 다진 아베 총리가 연내 관련법을 제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역시 긍정적이어서 집단자위권 도입은 급물살을 탈 것이 유력하다. 자민당 2인자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간사장이 참의원 선거 직후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집단자위권을 도입할 수 있도록 헌법해석을 바꾸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밝힌 건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어줬다. 


극우적 의제 밀어 붙이는데 한계 있어 


주변국들의 우려와는 달리 아베 총리가 극우적 의제를 밀어 붙이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미 워싱턴포스트지는 "2007년 참의원 선거 패배 이후 사임한 바 있는 아베 총리는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경제정책에 큰 비중을 뒀다"면서 "실패의 경험에서 배우는 점은 역사적으로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니지만 지금 일본 사회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광고기업인 에델만 저팬의 로스 로베리 사장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경제정책 성공으로 승리를 거둔 사실은 일본인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의미하는 신호탄"이라면서 "일본인들은 인구감소나 엔저 등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거시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과 국가 – 국제정치에서 사과가 갖는 의미'의 저자인 제니퍼 린드 다트머스대 교수도 미국의 유력일간지인 뉴욕타임스에 '일본 국수주의(Nationalism)의 한계'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아베 총리가 군국주의로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린드 교수는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은 개헌을 통해 군사대국화를 추구하고 있다. 한편 아베 총리는 선거 전 731부대를 연상시키는 훈련기에 올라타는가 하면 중국과 영토분쟁을 벌이는 센카쿠 열도 인근을 방문했다"고 한 뒤 "하지만 여론조사는 아베 승리의 일등공신이 극우적 의제가 아닌 일본 경제 활성화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그녀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일본유신회 공동대표)의 사례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강화해 나갔다. 하시모토 시장은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전쟁 당시 위안부 제도가 필요했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국내외에서 거센 비판을 받았다. 마이크 혼다 미 하원의원은 성명을 내고 "하시모토 시장의 발언은 일본정부가 과거사를 명백하고 분명한 방식으로 공식 인정하고 사과할 필요가 있는지 설명해준다"고 꼬집었다. 그는 빗발치는 비난에도 그의 발언을 철회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참패로 이어졌다. 일본유신회는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14명, 비례구 30명 등 모두 44명의 후보를 출마시켰으나 10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린드 교수는 "하시모토 도루가 불러온 논란은 아베와 다른 국수주의자들에게 일본의 민주주의가 침략역사를 부정하거나 부적절한 발언을 일삼는 정치 지도자들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고 평했다. 그녀는 이어 "일본의 잔혹했던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국수주의자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바쳐 역사적 진실 규명과 과거사 왜곡에 맞서 싸우는 합리적인 보수파 정치가들과 중도주의자들, 활동가들, 학자들, 언론인들, 예술가들, 문인들 역시 상당수에 이른다"며 일본 내 극우주의 경향에 경종을 울렸다.


아베 총리는 중·참의원을 동시에 손에 쥐면서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의 앞에는 일본 경제의 부흥과 주변국과의 관계설정이라는 두 갈래 길이 놓여 있다. 만약 극우적 의제를 밀어 붙인다면 주변국과의 관계는 파국을 맞을 위험성이 높다. 이 경우 모처럼 활기를 찾은 경제에도 악영향이 미칠 것이 분명하다. 반대로 경제에 전념할 경우 일본은 고질적인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호기를 맞이할 것이다. 


선택은 전적으로 아베 총리의 몫이다. 일본 국민은 물론 주변국들 모두 아베 총리가 현명한 선택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