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과학과 종교는 대척점에 있는가?
알리스터 맥그래스, <우주의 의미를 찾아서>
과학의 발달로 인해 가장 심각한 불안을 느낀 영역은 바로 종교, 서구문명의 경우 기독교였을 것이다. 종교개혁 이전 가톨릭교회는 종교적 권위를 지키기 위해 과학적 발견을 탄압했다. 하지만 점점 기술이 발전하고 두 차례의 파국적인 전쟁을 거치면서 과학은 절대 지존의 지위를 차지했고 기독교는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했다. 하지만 늘 의문은 남는다. '과학과 종교는 대척점에 있는가?'하는 의문이다.
© 새물결플러스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과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이 같은 질문에 명쾌한 어조로 '아니오'라고 답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은 이 세상의 이치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견해는 그의 책 <우주의 의미를 찾아서>(새물결플러스刊)에 잘 요약돼 있다. 이 책은 적대적으로 보였던 과학과 종교가 각자 다른 영역에 속해 있음을 지적해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과학과 신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해준다. 실상 과학이 실재에 대한 최적의 설명을 제시해 준다면 기독교 신앙은 보다 본연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의 탁월함은 과학의 절대성을 주장하며 무신론을 펼치는 논객들의 논리적 허점을 꼬집는 대목이다. 저자인 맥그래스는 이런 주장들을 새로운 무신론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리처드 도킨스와 대니얼 대닛을 대표주자로 지목한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의 저작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맥그레스에 따르면 도킨스류의 무신론은 종교를 "우연이 생겨난 부산물"이나 "뭔가 쓸모 있는 것이 잘못 발사된 것"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변증가로서의 면모가 빛을 발한다. 저자는 이런 무신론들이 전제부터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저자에 따르면 도킨스류의 무신론은 과학과 종교가 전쟁상태에 있다는 관념을 견지하고 있는데, 이 관념은 현대 학문과 심각한 부조화를 빚는다는 것이다.
"과학과 종교가 영원히 전투상태에 있다는 생각은 19세기 말에 높은 인기를 누렸는데, 이는 주로 사회학적 이유 때문이었다. 대중 매체에서는 과학과 종교가 전투 상태에 있다는 생각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역사 속에서 과학과 종교가 주고받은 상호작용에 관한 우리 지식이 늘어나면서 학계에서는 이런 생각이 지지대를 잃어 버렸다. 그러나 도킨스는 지금도 확고부동하게 이 진부한 전쟁 모델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도킨스가 아주 어리석고 도저히 변호해줄 수 없는 몇몇 판단에 이른 것도 바로 같은 이유 때문이다."
- 73~74쪽
기독교 신앙의 역할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틈새를 메우는 데 한정돼 있지 않다. 인간은 본연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려는 욕망을 지닌 존재다. 과학은 치밀한 데이터를 통해 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다. 기독교 신앙은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는 과학적 데이터를 초월한다.
"하나님은 세계의 틈새들과 외진 구석에서 발견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주 전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분이다. 오직 그분만이 어떤 것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실 수 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실 수 있다. 기독교 신앙은 자연을 바라보는 대안을 제공하며 때로는 과장된 과학적 방법에 도전장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이 과학적인 것이든 신학적인 것이든 기독교 신앙은 그것을 인간의 진리 추구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보고 기꺼이 받아 들인다."
- 110쪽
과학에 문외한이라고 해서 이 책을 어렵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의 문장은 간결하고 논지는 분명하다. 번역도 매끄럽다. 과학적 이론을 쉽게 풀이해 문외한에겐 오히려 과학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길라잡이 역할을 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기독교 신앙과 과학이 전혀 대립적이지 않음을 쉽게 이해시켜준다.
한국 사회에선 종종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이 고개를 든다. 이들의 주장은 한 마디로 '진화론을 믿을 수 없으니 신의 창조를 믿어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진화론은 생태계의 진화과정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일 뿐 믿음의 대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신빙성이 결여된다고 해서 곧장 종교적 교의의 절대성을 주장하고 나서는 것도 넌센스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규정한 신학과 과학의 영역에 대한 고찰은 충분히 음미할 가치가 있다.
"과학과 신학은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진다. 과학의 경우에는 사물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 무슨 과정을 거쳐 생겨나는지 를 묻는다. 신학의 경우는 사물이 왜 - 무슨 목적으로? - 생겨나는지 묻는다."
-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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