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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고 싶다

문향(文香) 따라 걷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 그리고 부암동 길

문향(文香) 따라 걷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 그리고 부암동 길



* 윤동주 시인의 언덕 


서울은 고층빌딩 일색이다. 600년 고도 서울은 삭막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하지만 서울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시답게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원천이기도 했다.


한 세기 전으로 되돌아가보자. 학창시절 윤동주(1917~1945) 시인의 시는 누구나 한 번쯤 접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의 대표작 '서시', '별 헤는 밤' 등은 세대를 뛰어 넘어 수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며 널리 애송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언덕길을 거닐며 시상(詩想)을 얻었다.


그는 1938년 광명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연희전문학교 시절 소설가 김송의 집에 하숙을 했는데 그의 하숙집이 있던 곳이 지금의 청운동 언덕길이다. 청운동은 인왕산과 북악산이 만나는 곳이다. 그는 인왕산과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거닐며 그의 대표작 '서시', '별 헤는 밤' 등을 구상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서시'를 청운동 언덕길에서 다시 한 번 음미해 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 운다.


청운동 일대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서민 아파트가 난립해 있던 곳이다. 관할구청인 종로구는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일대의 서민 아파트를 철거하고 주변을 정비해 2009년 7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조성했다. 과거 윤 시인이 거닐었을 언덕길은 공원으로 단장돼 있고, 그의 대표작 서시를 새긴 시비는 서울 하늘을 굽어보고 있다. 또 인왕산과 북악산을 이어주는 길은 현대식으로 포장돼 있다. 




* 윤동주 시인의 언덕 오르는 길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오르는 길은 다소 가파르다. 하지만 조금만 숨을 참으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코스가 험하지도 않은데다 2km에 채 미치지 못하는 짧은 코스이기 때문이다. 언덕에 오르고 나면 실망감도 든다. 너무 깔끔해서 인위적인 느낌이 강한 탓이다.


하지만 이 길은 예사 언덕길이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체취가 서려 있는 길이다. 이 길을 거닐며 시상을 떠올린 윤동주 시인의 모습을 상상하며 언덕을 오른다. 이 언덕길은 시인의 문학세계로 안내하는 길이기에 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오르면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인왕산과 북한산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산들바람은 영혼을 정화시켜 준다. 지금 서울은 회색빛 고층 빌딩 일색이다. 밤이 되면 붉은 색 십자가가 도심을 뒤덮는다. 공동묘지로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한 세기 전 윤동주 시인은 서울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바로 이곳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시심을 맘껏 발산했다.



문인의 체취는 간데 없어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내려오면 부암동 동사무소가 보인다. 동사무소를 감싸고 돌아가는 골목길은 아담하고 한적하다. 곳곳에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카페들도 눈에 띤다. 카페는 잠시 뒤로하고 골목길을 따라 걸어보자. 좁은 골목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소설가 현진건(1900~1943)의 생가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다.


공교롭게도 현진건의 생가터 바로 위편엔 안평대군의 별장인 무계정사가 자리하고 있다. 현진건 집터는 말 그대로 폐허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현진건은 이곳에서 '무영탑', '흑치상지' 등 대표작을 집필했다. 현진건 생가터엔 불과 얼마 전까지 그의 고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고택은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을 것을 우려한 나머지 소유주가 2003년 철거했고 그래서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다. 지난 해엔 이곳에 주차장을 조성하려다가 주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었다.


 

* 현진건 생가터

 

현진건은 한국의 근현대 소설을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가 현대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 볼 때 그의 체취를 간직한 고택은 역사적-문학적으로 큰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그의 체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지금은 폐허만 남았다. 문학관을 지어주지는 못할망정 우리 문학에 크나 큰 발자취를 남긴 작가의 흔적을 무참히 없앤 처사는 야속하기 이를 데 없다. 



 * 안평대군의 별장인 무계정사.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버거워 하는 모습이다.



* 안평대군의 친필. 안평대군은 시-서에 능했다.

 

안평대군의 별장인 무계정사도 허망하기 그지없다. 안평대군은 뛰어난 서예 솜씨를 자랑했다. 그의 서예 솜씨는 무계정사에서 엿볼 수 있다. 무계정사는 안견의 예술혼을 자극한 곳이기도 하다. 안평대군은 부암동 일대를 돌아보곤 이곳이 자신이 꿈속에서 본 무릉도원과 비슷하다면서 무계정사를 지었다. 안평대군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안견은 그의 꿈을 화폭에 옮겨 놓는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조선시대 산수화의 대표작인 '몽유도원도'다.


청운동에서 시작한 윤동주 시인의 언덕은 현진건, 그리고 안평대군의 체취로까지 이어진다. 비교적 무난한 코스다. 도심에 위치해 있어서 반나절의 시간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둘러볼 수 있다. 북악산과 인왕산의 공기를 마시는 일도 상쾌하기 그만이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더 좋다. 아이들에게 주는 교육효과가 무척 크기 때문이다. 가정의 달 도심 나들이 코스로 그만이다.


상쾌한 산들바람 가득한 5월, 윤동주 시인의 언덕, 그리고 좁고 아기자기한 부암동 길을 거닐며 문인과 예술인들의 예술혼을 느껴보자. 시심을 마음 한 가득 안고서....


@ 2011.04.29. 윤동주 시인의 언덕, 그리고 부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