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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이 되어

신앙이라는 이름의 도그마....괴음성 파일 유감

안타깝게 세상을 뜬 한 연예인의 영혼이 무참히 유린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신앙의 이름으로. 사건의 발단은 경기지역에 위치한 조그만 교회의 전도사가 녹음한 음성파일이다. 이 파일은 '최진실의 지옥의 외침'이란 검색어로 빠르게 번져 나갔다. 문제의 파일 속에서 최진실의 영혼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절규하듯 외친다. 


자살하지 말아요. 내가 자살했기 때문에 내 동생도 여기 왔어요. 나 좀 꺼내줘요. 나 좀 꺼내주세요! 이 지옥은 악바리 같은 사람도 통하지 않는 곳이에요. 나, 최진실이가 지옥에 있다고 전해주세요!


음성 파일의 분위기는 기괴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더욱 기괴한 건 여전도사의 입장이다. 한 인터넷 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 여전도사는 "기도를 하는 중에 영이 지옥으로 내려가 그 장소에서 최진실을 봤고, 그 사람이 말한 것을 그냥 전한 것"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다. 기독교는 샤머니즘의 주술적 제의이고 전도사는 영매란 말인가? 


음성 파일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자살금지와 예방이다. 취지는 좋다. 하지만 첫째, 방법이 틀렸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신앙관이 잘못됐다. 이 대목에서 기독교계의 무지와 독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영국 작가 브람 스토커의 고전소설 '드라큘라'는 이 같은 무지를 해소해줄 유용한 텍스트다. 


사실 드라큘라하면 납량특집 괴기물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브람 스토커의 원작 소설은 종교, 특히 기독교의 독선과 교만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문명 비판서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터키의 침공으로 유럽이 위기에 처하자 트란실바니아의 드라큘라 백작은 전쟁터로 나간다.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르던 차 드라큘라 백작이 전사했다는 소식이 그의 부인 엘리사벳에게 전해진다. 그런데 이건 잘못된 정보였다. 


드라큘라 백작은 당당히 개선했다. 하지만 엘리사벳은 남편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드라큘라 백작은 아내의 주검 앞에서 오열한다. 바로 이 자리에서 불행한 사건이 벌어진다. 성직자들이 오열하는 드라큘라 백작 면전에 대고 엘리사벳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에 하느님의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는 저주를 퍼부은 것이다. 드라큘라 백작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해 십자가에 칼을 꽂는다. 이러자 십자가에서는 피가 흐른다. 이후 백작은 빛을 보아서는 안 되며, 피를 빨아 연명하는 흡혈귀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맞게 된다.  


기독교 교리는 삶과 죽음, 그리고 구원이란 선명한 구도로 짜여져 있다. 하지만 드라큘라 백작은 죽은 것도 아니요, 살아 있는 생명체도 아니다. 이 존재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배회하며 생명체들의 피를 빨아 연명한다. 이렇게 볼 때 드라큘라라는 모티브는 기독교의 단선적인 구도를 정면으로 비웃는 유령인 셈이다. 드라큘라가 저주를 받기 전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에 칼을 꽂았고, 흡혈귀가 된 이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십자가라는 대목은 그래서 무척 상징적이다. 


사탄은 바로 영혼의 교만 


기독교의 도그마는 참으로 질기고 강해서 심지어 비극적인 죽음마저 저주하고 조롱한다. 기독교 신앙과는 무관하게 자살은 어떠한 이유로든 잘못된 선택이다. 자신의 생명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이란 존재는 누군가의 귀한 자식일수도, 누군가의 소중한 혈육일수도, 또 누군가의 소중한 친구일수도 있다. 


그물망처럼 얽힌 관계 속에서 자신의 인생은 타인과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고받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죽음은 관계망 전체에 슬픔을 가져온다. 특히 인생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더 큰 슬픔과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런 죽음 앞에 어느 누가 신앙의 교리를 내세워 잘잘못을 따질 수 있을까? 


최진실이란 한 개인에 국한시켜 보아도 그가 자살을 택했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누구도 그의 영혼이 지옥을 맴돌고 있다고 정죄할 수 없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했다. 그녀를 둘러싼 온갖 루머, 결혼 실패.... 보통 사람으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맛봐야 했지만 대중 앞에선 환한 미소 지을 수밖엔 없었다. 그녀의 선택이 잘못이라 할 수 있을른지 모른다. 하지만 그 누가 신앙의 교리를 내세워 그녀를 죄인으로 매도할 수 있을까?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자신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사탄을 영혼의 교만, 웃음을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라고 규정한다. 문제의 음성파일을 녹음한 전도사와 그 전도사가 소속된 교회, 그리고 그들의 행동을 옹호하는 신도들의 무리들, 사탄은 바로 이들 속에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