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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이 되어

권위에 대한 순종이 미덕은 아니다

공영방송 MBC가 어제(5/8)로 파업 100일을 맞았습니다. 이명박 집권 이후 가장 엄혹한 세월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이 바로 파업에 돌입한 노조원들입니다. 


이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각 언론에는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암묵적으로 강요됐습니다. 바로 '정권 힘들게 하지 마라’는 모호하면서도 강력한 기준이었습니다. 언론인들이 취재 아이템을 기획할 때 마다 이 기준은 무시무시한 자기검열 기제로 작용했었습니다. 


MBC 노조는 유형무형의 탄압에 맞서 공정방송을 위해 파업을 결의했습니다. 왜 정권말기인 지금에 와서야 파업을 하냐는 불만은 잠시 접어 두었으면 합니다. 지난 4년 동안 언론사 내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건데, 파업을 단행할 의지라도 남은 것이 다행스러울 지경이니까요. 


그런데 100일을 맞는 날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두 명의 아나운서가 노조를 탈퇴해 업무에 복귀한 것입니다. 파업이 쉬운 일은 아닌데다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어 두 사람의 결정을 납득할 수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이 업무복귀로 내세운 명분은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습니다. 한 사람은 주요 프로그램의 앵커가 된다는 계시를, 또 다른 한 사람은 '권위에 복종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기독교적인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두 사람이 삶 가운데, 그리고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해 나가는 데 있어 종교적 신념을 내세우는 걸 문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종교적 신념을 직업윤리에 접목시키는 것은 신앙인으로써 바람직한 태도일 것입니다. 문제는 두 사람의 신앙관 자체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권위에 무조건적인 순종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권위에 대한 무조건 순종이 기독교 사상의 요체였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당대의 종교 권력자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복음을 전파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로마 법정에 끌려가서 모욕당할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식민권력에 빌붙어 일신의 안위만 추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민중들은 메시아를 갈구했습니다. 메시아가 나타나 혁명을 일으켜 체제를 전복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묵묵히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께서 권력에 순종하셨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는 이 땅에 오셨을 때부터 부활하실 것임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부도덕한 지배체제에 온 몸을 던져 맞선 것입니다. 십자가 부활은 부도덕한 권력이 하느님의 공의를 이길 수 없음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나라 교회에서는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을 미덕으로 포장합니다. 그렇다고 교회가 꼭 친정부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권에 대해서만 순종의 복음을 설파했습니다. 지난 민주정부 10년 동안 교회는 정권비판에 앞장섰습니다.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말입니다. 위선과 배도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비단 기성교회만 순종의 복음을 설파하는 건 아닙니다. 한때 젊은이 목회사역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목회자 역시 누누히 권위에 대한 순종이 신앙의 방법임을 강조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목회자는 변태적인 성추행 행각으로 교회는 물론 세상에 큰 누를 끼쳤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기독교인으로써 권위에 대한 순종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기를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부도덕한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이 미덕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부도덕한 권력과 종교의 위선에 온 몸으로 맞서라고 권면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