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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Review

'군산공장 폐쇄' GM의 민낯... 30년 전 저지른 '만행'

'군산공장 폐쇄' GM의 민낯... 30년 전 저지른 '만행'

[리뷰] 영화 <로저와 나> '반항적 다큐멘터리 제작자' 마이클 무어의 데뷔작


미국 동부 미시간주의 소도시 플린트는 거대 자동차 제조회사 제너럴 모터스(GM)의 발상지로, 한때 번영을 누렸던 도시였다. 플린트의 마차 제작업자였던 윌리엄 듀랜트는 1908년 이곳에 GM을 설립했다. 그런데 지난 1986년 이곳엔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다. 로저 스미스 당시 GM 회장이 플린트시 생산라인을 폐쇄하고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시민들 대부분은 GM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곳 지역경제는 GM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던 셈이다. 따라서 GM의 공장이전 조치로 플린트는 초토화되기에 이른다. 플린트 출신의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자는 GM의 공장폐쇄 조치가 가져온 대량해고의 여파를 생생히 목격했다. 그의 가족사 역시 GM과 관련이 깊다. 그의 아버지 역시 GM 노동자였고, 친인척 중 상당수가 GM에서 일했다.


이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이름은 '반항적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잘 알려진 마이클 무어였다. 수식어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볼링 포 콜럼바인>(2003), <화씨 9.11>(2004), <식코>(2007) 등 미국의 체제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가 괜히 미국의 체제에 대항하는 작품을 만든 게 아니다. 그의 반항적 면모는 플린트 시에 불어 닥친 대량해고의 후유증을 직접 보고 느낀 데서 비롯됐다. 


그는 GM의 공장폐쇄 조치가 가져온 플린트 시의 변화를 추적해 나간다. 그는 3년 동안의 취재 끝에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 작품이 데뷔작 <로저와 나>(원제: Roger & Me, 1989)다. 이 작품은 플린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교도관이 된 해고 노동자

▲반항적 다큐멘터리 제작자 마이클 무어는 데뷔작 <로저와 나>에서 미국GM의 대량해고 사태를 집중 파고든다.ⓒ 워너브라더스


GM이 떠난 뒤의 플린트 시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노동자들은 월세를 내지 못해 집에서 쫓겨나고 범죄율은 날로 치솟는다. 패스트푸드점에 재취업 해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늘 시간에 쫓기기 일쑤인 데다 감정노동은 생소하기에 노동자들로선 적응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지갑이 얇아 매장의 매출은 늘 바닥이고 노동자들은 또 해고로 내몰린다. 


대량해고는 이토록 무섭다. 말 그대로 '해고는 살인이다'. 사실 이 같은 상황은 플린트뿐만 아니라 대량해고를 겪은 다른 지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그런데 플린트의 경우는 더욱 끔찍하다. 시 당국이 실업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내세운 정책들 때문이다. 


먼저 시 당국은 관광산업으로 활로를 찾고자 호텔과 자동차 박물관을 짓는다. 자동차 박물관엔 과거 플린트 시가 번영을 누렸을 때 모습을 재현한 전시관도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시 당국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야 만다. 마이클 무어는 냉소 가득한 어조로 그 이유를 이렇게 진단한다.


"누가 인간사의 비극을 보러 오려 할까?"


이제 소개할 대책은 더욱 충격적이다. 시 당국이 범죄율이 자꾸만 치솟으니까 해고 노동자들을 교도관으로 채용한다. 해고 노동자들로선 교도관 일자리를 뿌리치기 어렵다. 소정의 과정을 거쳐 교도관 자격증을 따면 다른 주에서도 교도관으로 일할 수 있어서다. 


시 당국의 정책은 교도관이 된 GM 해고 노동자들이 범죄를 지어 수감된 옛 동료를 감시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마이클 무어는 교도관이 된 GM 해고 노동자들의 심경을 묻는다. 인터뷰에 응한 교도관들은 한때 동료 노동자였던 수감자들을 감시하게 된 상황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마이클 무어는 플린트 시에 닥친 비극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는다. 그러다 분을 이기지 못한 듯 이 비극을 몰고 온 로저 스미스 GM 회장과 인터뷰를 시도한다. 로저 회장은 무려 3년 동안이나 인터뷰를 거절했고, 마이클 무어는 천신만고 끝에 그와 접촉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로저 회장은 플린트 해고 노동자들에게 그저 '유감'이라는 입장만 밝히고 자리를 피했다. 3년간의 추적 끝에 얻은 한 마디 치곤 참으로 허망했다.


여기서 잠깐 당시 시대상황을 짚어봐야 한다. 로저 스미스 회장이 GM 생산라인을 멕시코로 이전하겠다고 밝힌 시점은 1986년이었다. 이때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 기간으로, 이 시기 레이건 행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다. 로저 스미스 회장이 멕시코로 공장 이전을 하기로 한 이유는 멕시코 노동자의 임금이 시간당 70센트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공장이전 조치가 '신자유주의'를 내건 레이건 행정부에서 이뤄진 게 과연 우연이었을까? 


데뷔작 이후 마이클 무어가 총기 사고(<볼링 포 콜롬바인>), 이라크 침공(<화씨 9.11>), 열악한 의료체계(<식코>) 등 미국 사회의 부조리에 천착한 건 <로저와 나>를 통해 일찌감치 미국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본 데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플린트의 과거는 군산의 미래?

▲영화 <로저와 나>는 최근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한 한국GM의 행태와 겹쳐진다.ⓒ 워너브라더스

이제 이 작품을 '소환'한 이유를 말해야 하겠다. 한국GM은 지난 13일 경영난을 이유로 "오는 5월 말까지 군산공장의 차량 생산을 중단하고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이러자 군산 지역 경제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가뜩이나 현대중공업의 군산 조선소 폐쇄로 휘청이던 군산은 한국GM의 선언으로 아예 주저앉을 위기에 처했다. 


한국GM의 경영난을 두고 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들은 노동자들의 낮은 생산성을 문제 삼으며 노동자 때리기에 앞장서는 모양새다. 반면 한국GM 노조 측은 국내에서 만든 자동차를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미국으로 보낸 게 원인이라며 맞서고 있다. 


한편 군산공장 폐쇄 조치가 한국 정부의 지원을 최대한 이끌어내려는 전략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실제 외신 등에선 GM 측이 우리 정부에 10억 달러(1조 원) 이상의 재정투입을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다. 


1986년 미국 GM 자본은 자국의 노동자가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싼 인건비를 찾아 공장을 멕시코로 옮겼다. 지금 한국GM이 보이는 행태는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앞서 적었듯 GM 자본의 급작스런 공장 이전 조치로 플린트는 유령도시가 됐다. 


일단 20일 청와대는 "군산을 고용위기지역과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긴급절차를 밟기로 했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어 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실사를 예고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하는 중이다. 


부디 우리 정부가 GM 자본의 술수에 맞서 슬기로운 대응 전략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 특히 마이클 무어의 <로저와 나>를 꼭 한 번 봐주었으면 좋겠다. 한국GM의 철수가 한국엔 어떤 파장을 미칠지, 또 GM 자본이 어떤 민낯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테니까 말이다. 


"나는 오바마 정부가 경찰과 특별 기동대, 미군을 대동하여 디트로이트 시내에 있는 GM을 급습해 이 사건과 연관 있는 누구라도 법정에 출두시켰으면 한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벌써 도망갔다면, 그들을 끝까지 찾아내 정의 앞에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마이클 무어 (2014년 GM의 대규모 리콜 사태 당시) 


[오마이뉴스, 2018.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