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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Review

천만 끌어모은 <신과 함께>, 문득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떠올리다

천만 끌어모은 <신과 함께>, 문득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떠올리다

리뷰] 불교 세계관 토대로 사후세계 그린 <신과 함께 - 죄와 벌>, 


종종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를 보고 재미와 감동을 느낄 때가 있다. 하정우, 차태현 주연의 화제작 <신과 함께 - 죄와 벌>이 그랬다. 사실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조카가 보고 싶다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보게 됐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쯤 눈시울이 젖어 있었다. 


사후 세계를 그린 영화는 대게 음울하다. 키아누 리브스의 2005년 작 <콘스탄틴>이 대표적이다. 반면 이 영화 <신과 함께>는 우리네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이 영화는 13일 기준 누적관객 1,200만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영화 흥행 8위까지 올랐는데, 우리 정서를 잘 건드린 게 주효했다고 본다. 

하정우, 차태현 주연의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이 13일 기준 누적관객 1,200만을 돌파하며 역대 한국영화 흥행 8위까지 올랐다. ⓒ 롯데 엔터테인먼트 


소방관 김자홍(차태현)은 화재진압 도중 사망한다. 저승에서는 그를 귀인이라며 융숭히 대접한다. 저승삼차사인 강림(하정우), 덕춘(김향기), 해원맥(주지훈)은 그가 7개 지옥문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자홍은 처음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삼차사로부터 마지막 관문만 잘 통과하면 그토록 그리던 어머니의 꿈에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선 각 지옥에서 이뤄지는 재판에 성실히 임한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들이 이승의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설정은 참으로 한국적이다. 


군 의문사 떠올리게 한 수홍의 죽음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불설수생경>에서 모티브를 얻은 세계관이다. <불설수생경>에서는 모든 사람은 죽은 뒤 49일 동안 살인·나태·거짓·불의·배신·폭력·천륜 7번의 재판을 거쳐야 하며, 7개 지옥에서 7번의 재판을 무사히 통과한 망자만이 환생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김자홍은 <불설수생경>에 적힌 내용 대로 7개의 지옥을 통과하면서 그가 이생에서 살았던 삶의 궤적을 되짚어 본다. 영화는 각 지옥의 특성을 살리는데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신과 함께> 제작진은 누구도 가본 적 없는 저승의 모습을 이질감 없이 전달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친숙한 자연의 물성으로 구현했다는 후문이다. 


차사인 강림은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김자홍의 환생을 돕는데, 그 모습이 흡사 <매트릭스>의 니오를 연상시킨다. 강림은 이승에서 자홍의 친동생 수홍(김동욱)이 전역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소대장인 박 중위(이준혁)가 이를 은폐한 사실도 알아낸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수홍은 원귀가 돼 저승을 어지럽히는데, 이런 설정 역시 우리 정서와 잘 맞아 떨어진다. 


여기서 수홍의 죽음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홍은 부하인 원 일병(디오)과 근무 중 사고를 당한다. 소대장인 박 중위는 수홍을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진급에 걸림돌이 될까 두려워 서둘러 수홍을 암매장하고, 탈영으로 신고한다. 원 일병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아들의 탈영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아들이 근무하던 부대를 찾아가 시위를 벌인다. 이때 어머니의 한은 극으로 치닫는다. 수홍의 원한도 폭발한다. 비록 <신과 함께>가 판타지의 형식을 빌었지만, 수홍의 죽음을 다루는 대목에선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부조리인 군 의문사를 끄집어 낸다. 


군 복무 중 의문사한 젊은이들 가운데 몇몇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미인수 영현’이란 이름으로 싸늘한 냉동고에 갇혀 있다. 이들의 한은 언제나 풀릴까? 이 영화 <신과 함께>가 조금이나마 이들의 한을 세상 사람들에게 일깨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후세계, 과연 존재할까?


다소 엉뚱한 상상일 수 있겠지만 영화가 끝난 뒤 사후 세계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사후세계는 상상 속에만 존재하고, 인간 존재는 아주 먼 과거부터 사후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발전시켜왔다.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이 그리는 사후세계 역시 상상의 산물이다. 

<신과 함께>가 판타지의 형식을 빌었지만, 수홍의 죽음을 다루는 대목에선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부조리인 군 의문사를 끄집어 낸다. ⓒ 롯데 엔터테인먼트 


이 영화에서는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신이 인간의 생을 저울질하고 이에 따른 형벌을 가한다. 이런 기준에 따른다면 인간은 거의 예외 없이 죽음 뒤 지옥행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인간이 이 세상을 살면서 죄를 안 짓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인공 김자홍(차태현) 조차 소방관으로 자신을 아낌없이 내던져 다른 사람을 이롭게 했음에도 이 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니 큰 죄를 지었을 때가 많았다. 자기희생적 삶을 살았던 김자홍도 흠결이 많았는데 평범한 사람들은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가 얼마나 많을까?


그러나 염라대왕의 심판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이 세상의 모습을 보라. 사법기구가 엄연히 존재함에도 힘과 돈을 가진 자들은 죄를 짓고도 법망을 유유히 빠져 나간다. 지옥이 따로 있지 않다. 지위고하와 관계없이 죄지은 자들에게 합당한 벌이 가해지지 않는 세상이 바로 지옥이다. 이런 자들을 위해서라도 지옥은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일부 개신교 교단이 설파하는 천국 복음도 떠올려 보게 된다. 특히 성공주의를 설파하는 보수 개신교 교단에서는 인간의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의를 설파한다. 이런 교의 대로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만 하면 죽어서는 구원 받아 천국에 거한다. 이 생에서 물의를 일으켰든 말든 말이다. 이런 천국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사실 이런 교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지, 사후 천국에 간다는 복음은 설파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교회 세습, 여성도 성추행, 성소수자 혐오, 수백억원 대의 배임·횡령, 친박 집회 동원 등 온갖 악행과 몰상식을 일삼으면서도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목회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이 생에서 지은 죄만큼 벌을 내리는 염라대왕이 더 공정해 보인다. 

역대 한국영화 흥행 8위까지 오른 <신과 함께 - 죄와 벌>. ⓒ 롯데 엔터테인먼트 


한편으로는 안심스럽기도 하다. 토속신앙이나 불교 등 그리스도교와 ‘다른’ 세계관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몰이를 했을 때 ‘사탄’, 혹은 ’반기독교적 영화’로 낙인 찍고 ‘기독교인은 이런 영화를 봐선 안되다’는 식의 흑색선전이 일곤했다. tvN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도깨비>가 이런 흑색선전에 휘말린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 <신과 함께>는 1천만 관객을 넘어섰어도 잠잠하다.  이를 개신교의 세위축으로 보면 지나친 비약일까?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이 영화 <신과 함께 – 죄와 벌>의 진정한 메시지는 가족간 화해, 그리고 용기라고 본다. 김자홍은 어린 시절, 생활고를 비관해 어머니와 동생을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다. 


마지막 천륜지옥에서 염라대왕은 이 사실을 들추며 김자홍에게 중형을 내리려 한다. 바로 이때 극적인 일이 벌어진다. 자홍에게 최종 선고가 내려지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수홍은 어머니에게 나타나 작별을 알린다. 어머니도 눈물로 아들과 작별을 고한다. 이 눈물은 염라대왕마저 감동시킨다. 염라대왕은 결국 김자홍에게 환생을 명한 뒤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잘못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중 일부만이 용기를 내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며, 또 그 중 정말 극소수가 진심으로 용서를 한다.”


인간이 죽어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누구라도 이 생에서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며, 잘못을 저질렀다면 용기를 내어 사과하고 용서를 빌자. 이런 생을 보냈다면 죽어서 여한은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