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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Review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리뷰] 최고 시청률 기록하며 막내린 <동네변호사 조들호>


언제부터인가 TV드라마에서 법은 단골소재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SBS의 <펀치> <리멤버 – 아들의 전쟁> 그리고 지난 달 31일 막을 내린 KBS 2TV <동네변호사 조들호>(아래 <조들호>) 모두 법 이야기다. 특히 조들호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펀치> <리멤버>에 비해 시종일관 유쾌한 전개로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잡아 끌었다. 여론조사 기관 닐슨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조들호>의 마지막회 시청률은 17.3%를 기록해 동시간대 방영된 SBS <대박> 8.1%, MBC <몬스터> 7.1%를 여유 있게 제쳤다. 


드라마의 전체적인 뼈대는 무척 간단하다. 수완 좋고 정의감 넘치는 조들호 변호사(박신양 분)가 대화그룹 정금모 회장(정원중 분)의 비리를 파헤친다는 내용이다. 조 변호사와 정 회장의 대결 중에 세월호, 대기업 로비, 전관예우 등등 그동안 우리가 익숙하게 봐왔던 부조리들의 민낯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런데 사실 이 같은 이야기 전개는 이제 익숙하다. 그러나 조들호는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드라마 살린 박신양의 혼신 연기 

▲수완 좋고 정의감 넘치는 변호사 조들호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반영하며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KBS


무엇보다 조들호 역을 맡은 박신양의 연기가 드라마를 살렸다. 조들호는 검사시절이나 변호사 시절이나 물불을 안 가린다. 정 회장은 그런 그가 못마땅하다. 이에 정 회장을 받드는 신영일 검사장(김갑수 분)과 법무법인 금산의 장신우 대표(강신일 분)는 공작을 꾸며 그를 파멸시킨다. 그런데도 조들호는 다시 일어나 정 회장과 맞서 싸운다. 


박신양은 조들호 역을 위해 말 그대로 몸을 던졌다. 그는 정 회장의 아들 마이클 정의 범죄행각을 추적하다 건물 옥상에 매달리는 신세가 된다. 그뿐만 아니다. 같이 일하던 이은조 변호사(강소라 분)의 양아버지 홍윤기가 밀린 건축 대금을 달라며 투신소동을 벌이자 현장으로 달려가 홍윤기와 함께 뛰어 내린다. 박신양은 이 장면에서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뛰어내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고층건물에서 뛰어내리던 순간, 그의 얼굴엔 현장감이 생생하게 묻어난다. 


신영일 검사장으로 분한 김갑수의 연기는 드라마의 무게감을 더해준다. 신 검사장은 검찰총장을 넘보며 그동안 협력했던 정 회장과 장 대표를 차례로 잘라낸다. 그리고 조들호 마저 없애고 득의양양하게 인사청문회장으로 향한다. 비록 조들호에게 역공을 당해 한 순간 추락했지만, 아들인 신지욱 검사(류수영 분)에게 자신의 야망을 투사한다. 


김갑수는 한 점 흐트러점 없는 연기로 야심만만한 신 검사장을 훌륭하게 표현해낸다. 장 대표로 분한 강신일과의 연기 호흡도 좋다. 이미 영화 <공범>에서 함께 한 적이 있어서인지 두 배우의 연기는 손발이 착착 맞는 느낌이다. 강소라, 박원상(배대수 역), 황석정(황애라 역) 등 조연배우들의 연기도 맛깔스럽다.


첫 머리에서 잠깐 언급했듯 조들호에 앞서 법조계의 이면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이미 인기리에 방영된 적이 있었다. 전작과 차이라면 조들호는 호흡이 아주 경쾌하다는 점이다. 사실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는 음울한 어조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조들호는 이 같은 난점을 훌륭하게 비껴갔다. 


조들호는 상대가 생각지도 못한 증거와 증인을 들고나와 상대를 골탕 먹인다. 그의 수완은 정 회장과의 싸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정 회장의 비자금 장부를 확보한다. 화들짝 놀란 정 회장은 정, 관계를 상대로 구명운동에 나서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조들호가 선수를 쳐서다. 그리고 정 회장 앞에 능청맞은 표정으로 나타나 밥 사달라고 조른다. 


비현실적인 이야기, 진짜 판타지로 그려 

▲조들호는 변호사란 직업의 무게에 대해 고민을 거듭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패는 이러한 고민이 없을 때 만연하는 것 아닐까.ⓒ KBS


이 드라마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정말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조들호는 맡은 사건마다 승리를 거두고, 그가 승리할 때마다 상대인 정 회장과 신 검사장, 장 대표는 약이 바짝바짝 오른다. 박신양의 몸 연기는 쾌감을 극대화한다.


드라마와 달리 현실은 냉혹하다. 조들호는 엉터리 이온음료를 만든 대화그룹을 법정에 세웠다. 반면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를 낸 다국적 기업은 국내 최대 로펌을 등에 업고 피해자를 겁박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는 하나 얼마나 의지가 있는지는 미지수다. 


또 드라마 속 신 검사장은 대화그룹 지분 300억을 탐내다가 조들호에게 일격을 당해 그 돈을 모두 날렸지만, 현실 속 검사장은 주식 시세차익으로 120억을 벌어들였다. 이에 대해 검찰은 대가성이 없고 시효가 지났다며 시간만 보내는 양상이다. 어디 그뿐인가? 금산은 그동안 약자의 목소리가 되어주지 못했던 점을 반성하고 거듭나겠단 의지를 내비친다. 반면 현실 속 국내 최대 로펌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재판 장면은 더더욱 허황하다. 법정 장면에서 판사와 검사, 변호사는 하나같이 비장한 자세로 재판에 임한다. 다른 법정 드라마도 매한가지다. 그러나 현실 법정은 딴판이다. 언론에 보도되는 큼지막한 사건이 아니면, 재판은 관료적으로 진행된다. 판사는 무뚝뚝한 어조로 개정을 알리고, 검사 역시 무뚝뚝한 어조로 공소를 제기하고 형량을 내린다. 끝으로 변호사는 검사가 제시한 증거를 반박하는 증거를 내미는 대신 대게 판사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것으로 변론을 마무리한다.


조들호는 변호사란 직업의 무게에 고민을 거듭한다. 드라마 속 조들호의 독백이다.


"죄를 짓고도 뻔뻔하게 잘 먹고 잘살고 있는 진범을 잡는 날, 어쩌면 나는 변호사라는 세 글자의 무게를 버텨낼 수 있게 될 거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주범인 옥시 래킷벤키저는 김앤장을 앞세워 법정 공방을 준비 중이다. 이를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원론적 시각에서, 아무리 대역죄인이어도 최고의 변론을 받을 권리는 있다. 문제는 이런 기본권이 돈다발의 무게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이다. 


우리나라에서 법조인 경력은 돈과 직결된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가 한 해 벌어들인 수익만 90억에 이른다. 반면 아무것도 없는 서민들에게 법의 문턱은 한없이 높다. 이런 모든 이유로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판타지다. 물론, 판타지가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은 오롯이 법조인의 몫이다. 


자, 그럼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오마이뉴스 2016.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