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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Diary

사진 한 장에 담긴 위선

사진 한 장에 담긴 위선 

- 사진은 이데올로기다 !


사진은 객관적인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얼핏 객관적으로 보이는 장면도 실은 사진가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최종 결과물은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따라 취사선택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AP통신 전쟁사진기자 조 로젠탈(1911~2006)의 ‘이오지마에서의 성조기 게양’이다. 

* 조 로젠탈, <이오지마에서의 성조기 게양>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미군은 이오지마까지 육박했다. 미군은 이오지마를 장악하면 이 섬을 발판으로 일본 본토까지 넘볼 수 있었다. 이에 미군은 이 섬에 대공세를 펼쳤다. 일본군 역시 이 섬을 빼앗기지 않으려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맞섰다. 미 해병대 대원들은 상륙 3일 섬 한 복판의 쓰리바치 산을 점령하고 정상에 성조기를 꽂았다. 그리고 조 로젠탈은 이 사진을 찍어 본국에 타전했다. 


우연찮게 찍힌 사진 한 장은 미국 내 여론을 단숨에 뒤바꿔 놓았다. 미국인들은 오랜 전쟁에 지쳐갔다. 게다가 전비 부담도 만만치 않아 여론 악화는 불을 보듯 뻔했다. 이 와중에 전해진 로젠탈의 사진 한 장은 미군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음을 압축해 전했다. 미국인들은 열광했다. 여론악화에 전전긍긍하던 미국 정부 역시 반색했다. 미국 정부는 사진의 주인공이었던 레니 개그넌, 존 닥 브래들리, 아이라 헤이즈를 본국으로 불러 대대적인 전채(戰債) 모금 캠페인을 벌였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버지의 깃발>을 통해 이들의 사연을 재조명한다]


이런 가운데 로젠탈의 사진이 조작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병사들의 동작, 그리고 성조기의 펄럭임 등 장면의 구성요소들이 우연히 찍혔다고는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의혹은 미국 정부의 애국심 마케팅에 묻혀 제대로 힘을 얻지 못했다. 사진 한 장이 미친 파급은 그만큼 강력했다.


*제25회 신문사진 인간대상(출처 : 계간 사진기자)


난데없이 박근혜의 사진 한 장이 논란이다. 문제의 사진은 박근혜가 세월호 참사 발생 다음날 가족을 잃고 우는 여자아이의 볼을 어루만지는 장면이 찍혀 있다. 이 사진은 지난 3월 사단법인 대한언론인회로부터 ‘제25회 신문사진 인간애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전후맥락을 싹둑 잘라낸 채 사진 그 자체만 바라보면 이 사진은 큰 문제없다. 오히려 휴머니티가 묻어 난다. 국가원수가 참사로 아파하는 모녀의 아픔을 위로하는 장면은 더할 나위 없이 극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원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극적 요소를 더해준다. 


그러나, 적어도 이 사진은 찍혔을 당시부터 권력 핵심부가 참사 후유증으로 위로 받아야 할 어린 아이를 무리하게 동원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게다가 사진의 주인공인 박근혜는 이후 슬픔 당한 유가족들을 야멸차게 홀대했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 1주기 당일 그는 홀연히 남미로 외유를 떠났고, 그 사이 경찰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얼굴에 캡사이신이라는 독성 물질을 뿌려대며 세월호의 아픔을 모욕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상은 60년대 사진기자들의 모임이 제정해 대한언론회가 2007년부터 주관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주관단체 및 상의 성격은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중요한 건, 이 단체가 인간애로 선정한 사진은 결코 인간애가 담겨져 있지 않는 점이다. 


현 정권은 이 사진을 강력한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감성을 자극하는 텍스트로 소비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림없는 꼼수다. 이 사진은 이 정권의 거짓과 위선을 폭로하는 텍스트로 소비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