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초월한 정직함의 화신
- 크리스 에반스 주연의 <캡틴 아메리카>
"강한 힘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
With great power comes with great responsibility.
마블 코믹스의 간판 수퍼 히어로 <스파이더 맨>에서 삼촌 벤이 성장통을 겪는 조카 피터에게 건넨 조언이다. 사실 벤 삼촌의 조언은 <엑스맨>, <헐크>, <아이언맨> 등 마블 코믹스 수퍼히어로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이다. 지금 다룰 <캡틴 아메리카>의 주제의식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저>의 주인공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는 원래 브룩클릭 뒷골목 출신의 몸무게 40kg에 불과한 왜소한 젊은이였다. 그럼에도 그는 착하고 순수하며 불의에 분노할 줄 알고, 뒷골목 깡패에게 흠씬 두들겨 맞으면서도 포기할 줄 모른다. 또 나치와 맞서 싸우기 위해 다섯 번이나 군 입대를 신청한다.
군은 스티브를 홀대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아브라함 에스카인 박사는 예외였다. 그는 스티브가 다섯 번이나 군입대 신청을 한 것에 주목한다. 그는 스티브와 짧은 면접을 가진 뒤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 참가를 제안한다. 이 프로젝트는 인간의 DNA를 변형시켜 신체능력을 강화시키는 프로그램이었다. 원래 이 프로젝트는 나치의 무기 개발 부서인 히드라의 총책임자 에릭 슈미트(휴고 위빙)이 눈독을 들였다. 이 당시는 아직 에스카인 박사의 연구가 미성숙한 단계여서 슈미트에겐 부작용이 나타났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에스카인 박사는 자신의 연구를 진행시켜 히드라의 야욕을 저지하려 한다. 미국 군부도 승전을 위해 에스카인 박사를 전폭 지원한다.
처음에 군은 최고 정예요원 가운데 한 명을 대상자로 선발하려 했다. 그러나 에스카인 박사는 스티브를 고집한다. 총괄 책임자인 체스터 필립스 대령은 박사의 의도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스티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원하던 군 입대의 꿈은 이뤘지만 신체 건장한 정예요원들의 틈바구니에 치이기 일쑤다. 그래서 박사가 자신을 왜 고집하는지 궁금해 한다.
마침내 실험 전날, 에스카인은 스티브를 찾아간다. 그리고 스티브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준다.
"평생 힘을 가졌던 강자는 힘을 존중할 줄 모르지. 그러나 약자는 힘의 가치를 알아. 그리고 연민을 느낄 줄 아는 법이네. 자신을 잃지 말게. 자네는 좋은 사람이야."
에스카인 박사의 말은 삐뚤어진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강력한 힘을 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이 대목은 "강력한 힘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주제의식을 다시 한 번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에스카인 박사 덕에 스티브는 강력한 힘을 가진 수퍼 히어로로 거듭난다. 그리고 곧장 전선에 투입돼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그러다가 작전 중 실종돼 50년 간 깊은 잠에 빠진다.
강직함은 시대변화를 초월한 가치
*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
<캡틴 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저>의 속편인 신작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는 전편에 비해 호흡이 무척 빠르고 액션도 폭발적이다. 타이틀롤 '캡틴 아메리카'역을 맡은 크리스 에반스는 거의 모든 장면에 얼굴을 내비치며 엄청난 힘을 뿜어낸다. 그러면서도 시대변화로 인해 정체성 혼란마저 겪는 스티브의 내면을 잘 표현해 준다. 그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에서 커티스 역을 소화하며 연기력을 다졌고, 이를 바탕으로 자칫 전형적인 영웅으로 비치기 쉬운 캡틴 아메리카의 캐릭터에 인간미를 불어 넣어 준다.
캡틴 아메리카는 비밀 정보조직 '쉴드'의 주축요원으로 맹활약을 펼친다. 그러나 시대는 변해 같은 팀이라도 서로의 임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지경이다. 스티브는 이로 인해 일사분란한 작전 지휘가 안돼 혼란스러워한다. 직속상관인 퓨리 국장 역시 늘 알다가도 모를 말로 그의 머릿속을 더 어지럽게 만든다. 그러는 와중에 쉴드는 최대 위기에 빠지고 그는 쫓기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는 쫓기는 와중에 난마와도 같이 얽히고섥힌 정보세계의 생리에 진저리를 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잃지 않는다. 시대변화에도 여전히 옳은 것은 있다고 믿으며, 이것을 쫒아 자신을 내던진다.
엄청난 물량을 투입한 블록버스터 액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종종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물론 <트랜스포머>처럼 엄청난 물량공세 말고는 알맹이 없는 오락물이 더 많지만 말이다. 그러나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는 <트랜스포머>류의 볼거리 중심 블록버스터와는 결이 다르다.
이 영화의 스케일은 전편인 <퍼스트 어벤저>를 훌쩍 뛰어넘고 <어벤저스>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퓨리 국장 역의 새뮤얼 L. 잭슨은 여전히 카리스마 넘치고 스칼렛 요한슨은 이제 액션배우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액션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여기에 대배우 로버트 레드포드 마저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러나 화려한 비주얼에 현혹돼 주인공 스티브의 내면에 흐르는 감정변화의 동선을 놓치지는 말자. 그는 복잡한 현실에서도 늘 정직을 추구한다. 그는 쫓기는 과정에서 자신을 노리는 적이 히드라임을 발견하고 경악한다. 와해됐을 것만 같았던 히드라가 세를 유지했고, 여기에 미국 정부가 깊숙이 개입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히드라는 더욱 가공할 정보수집력과 무력, 기술, 인력을 갖춘 공룡조직으로 진화해 있었다. 이들은 광범위하게 수집된 메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의 행동패턴 분석 프로그램을 개발해 냈고, 이를 통해 조직에 위협이 될 만한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해 일시에 제거하려는 음모를 획책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사진시집 <전쟁교본> 맨 끄트머리에서 히틀러를 향해 '저것이 기어나온 자궁이 아직 생산력은 여전하다'고 경고했다. 히드라의 준동은 브레히트의 경고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은 아무도 믿지 못하는 현실임에도 스티브는 강직함을 잃지 않는다. 이런 강직함은 악이 시대를 초월해 존재하듯 정직이란 미덕 역시 시대를 초월해 변하지 않을 가치임을 웅변해준다. 엄청난 물량이 투입될 영화라고 해서 단순히 시간 죽이기용 오락 영화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대목이다.
혹자는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에 너무 후한 점수를 주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의 활약상을 통해 미국이 일련의 거짓된 정책으로 스스로 리더십을 허물어 왔음을 은연중에 꼬집는 한편 머릿속의 생각만으로 권력의 감시를 당해야 하는 현대 세계의 살풍경을 정확히 갈파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의 활약이 계속될 것임을, 그리고 '지구 특공대' 어벤저스가 또 다시 결집할 것임을 암시한다. 캡틴 아메리카가 계속되는 활약 속에 또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지 사뭇 큰 기대를 품게 된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2014)
Captain America: The Winter Soldier
- 감독
- 조 루소, 앤소니 루소
- 출연
- 크리스 에반스, 스칼렛 요한슨, 사무엘 L. 잭슨, 로버트 레드포드, 세바스찬 스탠
- 정보
- 액션, 어드벤처, SF | 미국 | 136 분 | 201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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