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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Review

다이애나] 전설이 된 이름을 추억하며....

전설이 된 이름을 추억하며....

- 나오미 왓츠 주연의 <다이애나>


다이애나 스펜서, 다이애나 왕세자비로 잘 알려진 여인.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 남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의문투성이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삶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인사의 삶이 꼭 행복하지는 않다는 걸 보여준다. 

* 다이애나


영화 <다이애나>는 화려함 속에 숨겨진, 한 여성으로서의 흔적을 복기한다. 타이틀 롤 다이애나 역을 맡은 나오미 왓츠의 연기는 실로 눈부시다. 나오미 와츠는 흡사 다이애나비가 환생한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을 들게 할 정도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그런데 세인트 폴 성당에서의 화려한 결혼이라든지 영국 왕실의 비밀스런 내막 같은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일찌감치 접는 것이 좋다. 그녀가 펼친 인도주의적 활동마저 공적인 삶의 단편으로 간단히 언급될 뿐이다. 그 보다 이 영화는 파키스탄 출신 심장전문의 하스낫 칸(나빈 앤드류스 분)과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 이런 설정은 무척 파격적이다. 다이애나 비는 이집트 출신 대부호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아들 도디와 밀회를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다이애나가 도디와 진짜 로맨스를 가졌는지 조차 불분명하다. 오히려 다이애나는 처음 본 순간부터 하스낫을 사랑했고 결혼까지 생각한다. 그녀는 대담하게도 주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가발을 쓰고 그에게 다가가는가 하면 파키스탄 라호르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가기까지 한다. 


파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다이애나의 죽음을 설명하는 기존의 테제, 즉 극성스런 파파라치들을 따돌리려다가 참변을 당했다는 테제를 부정한다. 영화 속에서 다이애나는 자신을 줄기차게 쫓아다니던 신문사 편집장에게 도디 알 파예드와의 밀회장소를 알려준다. 파파라치에게 극도로 시달렸던 다이애나가 오히려 자신의 위치를 알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하스낫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아니면 실연의 아픔을 딛고 도디와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음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어서? 


또 남부러울 것 없는 영국 귀족가문 여성이 잇달아 이방문화의 남성들과 염문을 뿌린 사실 역시 의외다. 보수적인 영국 왕실에 대한 반발심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에겐 인종과 국적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았던 것일까? 


의문의 사고, 뒤이은 음모론 


세상을 떠나기 전 그녀는 미국 국가안보국(NSA), 이스라엘 모사드 등 각국 정보기관의 집중 감시 대상이었다. 그녀는 국제지뢰금지운동(ICBL)에 깊이 적극 앞장섰고, 이런 활동이 세계 주요국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도디 알 파예드의 부친인 모하메드는 줄기차게 영국의 기득권 세력과 정보부가 아들과 다이애나를 죽음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해 왔다. 모사드의 역사를 다룬 <기드온의 스파이>의 저자 고든 토마스는 모하메드가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갖고 있다고 적었다. 


"영국 기득권층, 특히 최고 상층부는 다이애나가 무슬림과 결혼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만일 두 사람 사이에 결혼이라도 이루어진다면 장차 영국의 국왕이 되는 윌리엄이 아랍인 양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두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다이애나의 새 시아버지가 되는 내가 다이애나에게 돈을 대 엘리자베스 여왕의 라이벌로 만들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들에게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영국의 기득권 세력은 내 아들과 내 아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과의 관계를 끊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 고든 토마스, <기드온의 스파이> 35쪽. 


모하메드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증거가 나온 적은 없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음모론으로 발전하며 상당기간 설득력을 얻어 왔다. 영화에서도 다이애나가 파리의 리츠 칼튼 호텔 복도를 나서기 전 감시의 눈을 의식한 듯 고개를 돌린다. 이 때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비추다가 갑자기 멀어져 복도 전체를 비춘다. 이 같은 장면 설정은 다이애나의 죽음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세기의 결혼, 시어머니였던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갈등, 남편 찰스 왕세자의 외도와 이에 따른 파경, 인도주의적 활동과 이방문화권 남성들과의 염문 등등 다이애나의 삶은 영화보다도 더 영화적이었다. 그녀의 불꽃같았던 삶은 한 편의 동화로 남아 오래도록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바람 속에서도 오롯이 타오르는 촛불 같아라

비가 내릴 때도 태양이 지고 나도 

약해지지 않는 그대의 발자취는 

여기 영원히 남으리


여기 영국의 가장 푸르른 언덕을 따라

그대의 촛불은 오래전에 다 타고 꺼졌어도 

그대는 전설이 되어 남으리


- 엘튼 존, <Candle in the wind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