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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Review

대중문화 리뷰] 법은 하나야! 나에게도 저들에게도!

대중문화 리뷰] 법은 하나야! 나에게도 저들에게도!

- SBS 인기 월화 드라마 <펀치> 

* 드라마 <펀치> [출처 = SBS]


“법은 하나야. 나한테도 당신한테도!”


2014년 1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인기리에 방영됐던 SBS 월화드라마 <펀치>의 극중 대사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법은 하나다. 아니, 하나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힘 가진 쪽은 온갖 불법, 탈법을 저질러도 법망을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반면 힘없는 쪽은 사소한 잘못이 빌미가 돼 모든 법적 책임을 뒤집어 써야 한다. 그렇기에 “법은 하나”라는 대사는 일그러진 법 현실을 고스란히 폭로한다. 


무엇보다 <펀치>의 가장 큰 매력은 대사다.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은 이태준 검찰총장(조재현), 윤지숙 법무부장관(최명길), 박정환 검사(김래원), 조강재 검사(박혁권), 신하경 검사(김아중), 최연진 검사(서지혜) 등이다. 이들이 내뱉는 대사는 무척 간결하다. 


신하경 검사는 딸 예린이가 탄 차가 사고가 나자 이 사건에 매달린다. 그러나 하경의 전 남편이었던 박정환 검사는 하경의 수사를 저지한다. 사고 차량 제조사인 세진 자동차 이태섭 사장이 정환의 직속상관인 이태준 검찰총장의 친형이었기 때문이다. 하경은 치를 떤다. 그러면서 정환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정환 씨, 한 걸음만 더 가자”고. 그러나 정환은 냉소적인 어조로 응수한다. 


“한 걸음 더 가봐야 정글이야.” 


극중 인물들이 주고받는 짤막한 대사는 그 자체로 강렬하다. 박경수 작가는 전작 <황금의 제국>에 이어 <펀치>에서도 녹록치 않은 필력을 뽐낸다. 이태준 총장을 연기했던 배우 조재현은 최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각 인물의 가슴에 들어가 글을 쓰는 것 같다. 머리로 쓰고 맞추는 대사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대사라 쏙 들어왔다”며 작가의 솜씨에 찬사를 보냈다. 

* <펀치>의 주요 등장인물.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정환 검사, 이태준 검찰총장, 신하경 검사, 윤지숙 법무부장관 [출처 = SBS]


등장인물들의 성격 묘사도 탁월하다. 정환은 출세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 그러다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남은 생을 악을 무너뜨리는데 바친다. 정환의 전 아내인 하경은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검사 경력을 건다. 이태준 검찰총장은 총장직을 꿰차기 위해 정관계에 전방위 로비를 벌이는가 하면, 총장직에 오르자 내심 최고 권력마저 넘본다. 한편 법무장관 윤지숙은 이 총장을 견제하려 하지만 되려 이 총장에게 약점을 잡혀 곤욕을 치른다. 정환과 태준, 태준과 지숙, 지숙과 정환은 수시로 서로를 정조준하며 대립하다가 일순간 뒷거래로 손잡으면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다. 특히 정환과 태준이 벌이는 치열한 수 싸움은 극의 재미를 증폭시킨다. 단, 반전이 너무 남발된 것 같아 아쉽다. 


개인적으로는 윤지숙 장관의 캐릭터가 가장 인상 깊다. 그녀의 캐릭터는 아주 독특하다. 법조 명문가에서 자랐고 정의감도 남다르다. 그는 이태준이 검찰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는데 자신의 전부를 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불법으로 아들을 병역면제 시키고, 이를 덮으려 정환과 하경을 차례로 내친다. 특히 그녀가 차를 몰고 하경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하는 장면은 소름끼친다. 그럼에도 그녀는 죄책감이 없다. 오히려 검찰에서 이태준 쪽 사람들을 내치고 검찰을 개혁해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자기최면을 건다. 그것이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보상하는 방식이라는 이유를 내세워서 말이다. 윤지숙의 파멸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운다. 


<펀치>의 결말, 과연 해피엔딩일까? 


드라마의 결말은 전형적인 해피엔딩이다. 시한부 인생을 살던 정환은 이 총장과 윤 장관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떠난다. 이들을 단죄하는 임무는 하경의 몫이다. 이런 결말은 충분히 예상했다. 시청자들도 이런 결말에 환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말은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다. 


드라마 <펀치>가 그리는 검찰은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현실의 검찰이 드라마 보다 훨씬 더 야비하다.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이른바 ‘스폰서’ 관행을 언론에 제보한 제보자를 파멸 지경에 이르게 하는 가하면, 검사 재직 시 재벌의 민원을 들어준 뒤 검사 옷 벗고 해당 재벌의 임원으로 취직하는 등 검찰의 전횡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자 검사를 지낸 현직 도지사마저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 네트워크 계정에 공개적으로 “최근 검찰의 모습은 부끄럽기 한이 없다”고 고백했을 지경이다. 


이런 검찰의 민낯을 고발하는 임무는 언론이 맡아야 한다. 그러나 언론은 검찰이 내놓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기 바쁘다. <펀치>는 적어도 검찰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가치 있다. 그러나 ‘검찰개혁’ 의제는 단순히 드라마의 소재로 소비될 수는 없는, 이 시대의 시급한 과제다. 


현실은 암담하다. 2014년 12월 정국을 뒤흔들었던 정윤회 국정농단 사건 같이 국기를 뒤흔드는 사건이 벌어져도 여론은 꿈쩍도 안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역시 검찰이 총대를 멨다. 대통령은 수사 지침을 하명했고, 검찰은 이 하명에 따라 사건을 ‘문건 유출’로 주물렀다. 2015년 4월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로 불거진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 역시 물타기가 한창이다. 


적어도 현실에선 정환과 하경이 이태준 검찰총장과 윤지숙 장관을 절대 무너뜨리지 못한다. 정환과 하경 같은 인물은 조직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이 총장과 윤 장관이 요직을 꿰찬다는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펀치>의 결말은 검찰개혁 의제를 적당한 수준에서 해소시켜준 데 불과하다. 차라리 하경과 정환이 처절할 이 만치 파멸하고, 이 총장과 윤 장관이 승승장구 하는 결말이었으면 더욱 강렬한 여운과 크나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을 것이다. 


법은 하나일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권력자들은 <펀치>의 윤지숙 장관처럼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국민들에게는 끝없이 엄격함을 요구한다. 드라마가 이런 현실을 과감히 드러내는 건 분명 바람직하다. 그러나 단순한 드라마 콘텐츠 소비로 끝나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펀치>가 끄집어 낸 검찰개혁 의제가 사회 변화의 에너지로 승화되지 않고, 오히려 해피엔딩에 가려 증발한 건 아닌지 곰곰이 돌아봐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