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찬성’ 보수 교계, 역사의 죄인 되고자 하나?
한기총·한교연, 약자 아픔 외면하고 국정화만 찬성
기독교 신앙은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한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더럽고 때 묻은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공생애 기간 동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눈뜸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가져다줬다. 그래서 그리스도 신앙을 가진 이들, 특히 성직자들은 낮은 곳의 목소리에 늘 예민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이 목소리를 듣지 못할 때 이들의 입에서는 헛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구약성서 사무엘상 1장의 기록을 보자. 엘가나의 아내 한나는 자식이 없어 마음 아파한다. 엘가나의 새 아내 브닌나는 이를 알아채고 한나의 마음을 어렵게 한다. 브닌나는 자녀를 많이 낳아 입지가 탄탄했기에 한나를 더욱 강도 높게 압박할 수 있었다.
한나는 어디에도 하소연하지 못하고 속앓이만 하다가 야훼 성전에 올라가 그 아픔을 여호와께 토해낸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제사장 엘리는 한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런데 엘리는 결정적으로 헛발질을 하고야 만다. 엘리는 한나가 술에 취해 웅얼거리는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는 너그러움을 잃지 않는다. 엘리에게 그저 서럽고 괴로워서 기도했다고만 할 뿐이다. 엘리는 다시 제사장다운 모습으로 돌아가 한나에게 “그럼, 안심하고 돌아가거라. 이스라엘을 보살피시는 하느님께서 네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고 한다.
이 대목은 짧지만 아주 상징적이다. 엘리는 힘없는 여인이 왜 웅얼거리는지 알지 못했다. 당시 불임은 천형으로 여겨졌다. 한나로서는 아이가 없어 죄인 취급당하는 상황이 서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남편의 새 아내에게서 마저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다. 결국 한나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아픔을 하나님께 토해냈다. 그러나 제사장은 한나의 사연을 몰랐다. 아예 한 술 더 떠 “언제까지 이렇게 주정을 하고 있을 참이냐? 어서 술에서 깨어나지 못하겠느냐?”(사무엘상 1:14)고 타이르기까지 했으니, 엘리는 한나의 사연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엘리의 복사판이다. 주위를 돌아보라. 젊은이들은 일할 곳이 없고, 노인들은 빈곤에 허덕인다. 직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언제 쫓겨날지 몰라 사측의 부당한 지시에 고개를 조아리고, 이미 쫓겨난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가 자신들이 ‘사람’임을 외치며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외친다. 약한 자, 가난한 자, 억눌린 자, 포로된 자가 넘쳐나는 세상이란 말이다.
그러나 목회자들, 특히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가장 낮은 곳의 외침엔 아랑곳없다. 오히려 정부 방침을 하나님의 목소리와 동일시한다. 가장 비근한 사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보수 교계가 찬성입장을 드러낸 일이다.
올바른 역사 만들겠다고? 누가?
‘올바른’ 역사는 정권을 잡은 정치세력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 정부·여당은 ‘올바른 역사’를 외칠 자격이 없다. 대통령부터 그렇다. 대통령은 집권 3년차를 맞도록 후보 시절 내놓았던 공약들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눈꼽만치도 없는지, 자신의 약속을 저버린 데 대해 일언반구 설명이 없다. 그래도 최근 국정화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음을 의식한 듯, 지난 27일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일부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로 역사 왜곡이나 미화가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지만 그런 교과서가 나오는 것은 저부터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간 행적을 볼 때, 대통령의 발언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여당 역시 마찬가지다. 청와대의 하청업자 역할만 할 줄 알았지 우리 사회가 갈수록 살벌해지고 있는 데 대해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노조가 쇠파이프만 안 휘둘렀다면 국민소득 3만 불 갔을 것”이라든지, “청년들은 뭐만 잘못되면 국가탓”이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런 자들이 ‘올바른’ 역사를 세우겠다니 정신감정부터 하는 게 순서겠다.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패악질에 교회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대해 고신, 예장합동, 대신 등 보수 교단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등 보수 교단 연합체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한기총, 한교연 등이 포함된 ‘한국기독교 역사교과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2일(목)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사진 출처 = 한기총]
“대한민국의 뿌리를 흔드는 좌편향적 역사교과서가 판을 치고 있다. 이는 정부가 국정교과서가 아닌 검인정 교과서를 채택한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산업화 과정을 자본가들의 착취로,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식 사회주의로 미화한 현재의 검인정 역사교과서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 양병희 한교연 대표회장, 2015.10.07.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진보주의, 자유주의 물결을 막고 한국교회의 복음, 보수신앙을 지켜나가야 하는 목적이 있으며, 한국사회와 가치를 무너뜨리는 이단, 동성애 등에 단호히 대처해 나가야 한다. 또한 기독교를 폄하하고 좌편향된 교과서로 우리의 자녀들을 가르치게 해서는 안 된다. 좌편향된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서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쓰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이영훈 한기총 대표회장, 2015.10.15.
이들이 국정화에 찬성하는 논리는 기존의 역사 교과서가 ‘좌편향’됐으며, ‘기독교 역사기술 비중이 타 종교에 비해 적다’는 것이다.
먼저, 좌편향 운운은 정부·여당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좌편향이라는 현행 역사 교과서는 장로 대통령 집권 시절인 2011년 마련된 검정 기준을 통과한 것들이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장로 대통령이 좌편향 교과서를 일선 교육현장에 보급한 셈이니, 좌편향이라고 주장하기에 앞서 ‘장로 대통령’의 회개를 외쳐야 순서 아닐까?
다음으로 현행 역사 교과서에서 기독교 역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는 주장은 몰역사적이다. 기독교가 우리 역사의 변곡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건 움직이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가까운 과거의 일일 뿐이다. 5000년 넘는 우리 역사에 기독교가 등장하는 시점은 100년 남짓이다. 장로교단은 올해 총회 100주년이었고, 성공회는 올해 관구설립 125주년을 맞았다. 우리 역사를 지질에 비유하자면, 기독교는 지표면을 덮은 표토층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더구나 국정화가 실현됐다고 해도 이들의 궁극적인 바람, 즉 기독교 비중 확대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현 정권이 국정화를 추진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과 여당 대표 부친들의 친일 행적 세탁이다. 따라서 국정화 과정에서 근대사 비중은 대폭 줄어들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기술 비중 역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앞서 지적했듯, 한국 역사에서 기독교가 등장하는 시점은 근대이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보수 교계가 이런 결과를 내다보기나 한 걸까?
정부·여당이 사회가 갈수록 살벌해져 가는 와중에 느닷없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들고 나온 건 분명 실책이다. 정치공학으로만 따져보자. 정부·여당은 이 문제로 지지층인 보수층을 결집시켜 내년 치러질 총선에서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낼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데 대해서는 분명 뒷감당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정부·여당 입장에 동조하고 나선 보수 교계의 행태는 참으로 딱하다. 가뜩이나 성추행, 공금횡령, 논문표절 등 몇몇 목회자들의 범죄로 기독교 전체가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와중에 지난 22일엔 ‘장자교단’인 예장합동 교단의 총무를 지낸 목사가 한때 자신의 측근이었던 목사에게 칼부림을 벌이기까지 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교회와 목회자 모두 낮은 곳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오로지 욕망만 좇은 데 대한 당연한 귀결이다.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온갖 범죄가 만연하는 교회에 과연 구원이 있을까? 교회가 인간을 죄악으로부터 구원하는 게 아니라 죄악으로 얼룩진 교회로부터 인간을 구원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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